동문오피니언
원현린(75회) 칼럼/사적제재, 사형(私刑)을 경계한다(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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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기호일보(25. 1.23)
사적제재, 사형(私刑)을 경계한다
/원현린 주필(主筆)
원현린 주필
진(晉)나라 사람 예양(豫讓)은 범씨(范氏)와 중항씨(中行氏)를 섬기다가 그들을 떠나 지백(智伯)을 섬겼다. 지백은 예양을 존중하고 아꼈다. 지백이 조양자(趙襄子)를 치자 조양자는 한나라 위나라와 함께 지백을 멸망시켰다. 예양은 탄식했다. "아!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 죽고(士爲知己者死), 여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화장을 한다(女爲悅己者容)고 했다. 이제 지백이 나를 알아줬으니 내 기필코 원수를 갚은 뒤에 죽겠다."
마침내 성과 이름을 바꾸고 죄수가 돼 양자의 궁궐로 들어가 몸에 비수를 품고 화장실 벽을 바르는 일을 했다. 양자가 화장실에 가는데 이상한 마음이 들어 조사해 보니 예양이었다. 예양은 말했다. "지백을 위해 원수를 갚으려 했소." 주위에 있던 자들이 그의 목을 베려고 했다. 그때 양자가 말했다. "그는 의로운 사람이다. 옛 신하로서 주인을 위해 원수를 갚으려 했으니 천하의 현인이다."
얼마 뒤 예양은 몸에 옻칠을 하고 숯가루를 먹어 목소리를 바꿔 자신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게 하고 시장을 돌며 구걸을 했다. 예양을 알아본 친구가 말했다. "예물을 바치고 양자의 신하가 돼 섬긴다면 양자는 틀림없이 자네를 아낄 걸세. 그때 가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쉽지 않겠는가?" 예양이 말했다. "남의 신하가 돼 섬기면서 그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 것은 두 마음을 품고 자기 주인을 섬기는 것일세."
얼마 뒤 양자가 말을 타고 다리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말이 놀라는 바람에 숨어 있던 예양이 또 붙잡혔다. 양자는 예양을 꾸짖었다. "이제 지백도 죽었는데 그대는 유독 무슨 까닭으로 지백을 위해 이토록 끈질기게 원수를 갚으려고 하는가?" 예양이 말했다. "지백은 저를 한 나라의 걸출한 선비로 대우했으므로 그에게 보답하려는 것입니다."
그러자 양자는 한숨지으며 말했다. "예자(豫子)여! 이제 그대는 각오해야 할 터." 예양이 말했다. "오늘 일로 신은 죽어 마땅하나 모쪼록 당신의 옷이라도 칼로 베어 원수를 갚으려는 뜻을 이루도록 해 주신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습니다." 이 말을 들은 양자는 그의 의로운 기상에 크게 감탄하고 자기 옷을 예양에게 가져다 주도록 했다. 예양은 칼을 뽑아 들고 세 번을 뛰어올라 그 옷을 내리치며 말했다. "이것으로 나는 지백에게 은혜를 갚을 수 있게 됐구나!" 그리고 칼에 엎어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 나오는 얘기다. 아무리 충성도가 높다 해도 보통인으로서는 할 수 없는 충심이라 하겠다. 후세 사람들은 이러한 예양의 충의지심(忠義之心)에 감복하며 지금도 눈시울을 적시고 있다.
신분 높은 인물의 신변안전을 지키는 사람을 호위무사(護衛武士)라 한다. 요즘 경호원이 이에 해당한다. 지난 15일 공수처가 신청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되자 이를 집행한다며 공수처 수사관들은 경찰을 동원, 2차 시도 끝에 철옹성을 방불케 하는 대통령 관저에 법 집행 명목 하에 무혈입성, 대통령 연행 목적을 달성했다. 대통령이 구속돼 서울구치소에 입감되자 김성훈 대통령경호처 차장은 구속 상태에 놓인 대통령을 24시간 경호한다며 서울구치소 내에서 경호 업무에 임하고 있다. 김 차장은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어떤 이유로 여기 왔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대통령이 여기 계시니까 경호하러 왔다"고 말했다.
국민들은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 초기에 유혈 충돌 사태를 걱정했다. 경호처와 수사팀 양측 모두 인내해 충돌은 없었다. 경호원들은 사람에 충성하느냐 법에 충실해야 하느냐를 놓고 고심도 있었을 것이다. 스스로의 몸을 불살라 대통령을 지키겠다며 ‘예양의 분신(分身)’을 자처하는 시민도 잇따랐다. 우리 사회 사법불신(司法不信)이 크다. 급기야는 19일 새벽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법원 청사에 난입하는 사건이 발생, 커다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민주국가에서 폭력은 결코 용인될 수 없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사적제재, 사형(私刑)을 경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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