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노벨문학상 (퍼온글)
본문
퍼온곳 : 인천일보(13.10.16)
조우성 - 노벨문학상
( 1083 )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백석의 맛'이란 책이 있다. 백석 작품 가운데 음식에 관한 시를 모아 해설한 것이다. 영인본 '사슴'에서는 못 봤던 몇몇 시도 수록해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역시 백석의 시는 아름답다. 삭풍이 몰아치는 북방의 정서 속에 녹아든 사투리 맛이 고스란히 정겹게 다가온다.
▶"이 히스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겨울밤 쩡하니 닉은 동치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작품 '국수'의 일부분)
▶그저 말이 나오는 대로, 꾸며대지 않고 그냥 그렇게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이런저런 사물을 노래한 듯 보이지만, 읽다 보면 그의 시구처럼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 있는 명시들이다. 한국인이 사랑할 시편들이란 생각이 든다./그럼에도 생전에 그가 무슨 '문학상'을 탔다는 얘기는 과문한 탓인지 알지 못한다. 노벨문학상은 꿈에서도 꾸지 않았을 것 같다. 그의 체취 같은 평안도 사투리를 제대로 표현해 낼만한 번역가가 없었을 뿐 아니라 식민지 시인에게 영예를 줄 국제환경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노벨상 제정 이래 지금까지 비(非) 알파벳 언어권인 아시아에서 문학상을 탄 이들은 가와바타 야스나리 등소설가들이었고, 시인으로서 유일하게 수상한 이는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했다는 인도의 타고르 단 한 사람뿐이었다는 사실은 시사해 주는 바 크다.
▶시는 원천적으로 번역이 불가능하다. 도대체 '히스무레', '슴슴한', '쩡하니', '더북한' 같은 말을 어찌 번역할 것이며, 한겨울 밤 동치미국에 만 국수를 먹어본 적이 없는 이들이 그 정서적 함량을 가늠이나 하겠느냐는 생각이 든다. '번역 불가'는 시가 타고 난 숙명인 것이다.
▶언젠가 아시아에서 여섯 번째의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온다면, 그는 영어를 준모국어 모양 구사하는 타고르 같은 시인이거나 가와바타 야스나리처럼 번역가를 잘 만난 소설가일 가망성이 크다. 지역과 언어의 유럽 편중은 노벨문학상의 한계다.
/주필
2013년 10월 16일 (수)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