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전통 활쏘기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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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3.10.25)
조우성의 미추홀 - 전통 활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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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전통 스포츠 가운데 전국적으로 유명했던 부문은 '활쏘기'였다.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이다. '인천 지역의 편사놀이(정진명 지음)'와 '전국의 활터 보고서(국립민속박물관)'에 따르면 그 주역이었던 최고의 사정(射亭) '무덕정'은 1850년 이전부터 이미 활동했다.
▶무덕정을 비롯한 각 정에서는 '편사놀이'를 했다. 이는 전통적인 활쏘기 시합을 말하는데, 사정과 마을 간 편사가 있었다. 인천에서는 주로 '사정편사'를 했다. '활 잘 쏘는 사람'을 '주몽'이라 했던 바, 그의 아들 비류가 도읍한 인천에서 활쏘기가 성행했다는 것은 예사롭지 않다.
▶'조선의 궁술'이란 책에는 세칭 '장안편사'를서울사람들만 한 것으로 돼 있지만, '장안편사'는 말 그대로 고을마다 한 편사놀이를 일컫는 것으로 '장안편사'를 시행한 곳은 인천과 서울뿐이었고, 서울 지역과 편사를 할 경우 각 정에서 선수를 뽑아 출전시켰다고 한다.
▶현재 인천의 사정은 9곳에 달한다. 광복 전엔 광무정의 후신인 무덕정을 비롯해 문학정, 남수정, 연무정 등이 있었다. 원래 무덕정은 중구 도원동 광성고등학교 자리에 있었지만 6·25전쟁 통에 기와를 올린 사정이 파괴되자 몇몇 곳을 전전하다가 수봉공원에 정착했다.
▶무덕정 고문 김현원 옹이 사두(射頭)였을 때 이전했는데, 사원이 쉴 '정(亭)'을 설치한 곳은 무덕정 하나뿐이었다. 사원은 무덕정, 문학정, 연무정이 각각 40여명이었고, 서무정은 30명이었다. 규정은 없었지만 이들은 바지와 저고리에 두루마기를 차려 입고 사선에 나섰다.
▶일제강점기 때에는 일본인들이 활을 쏘지 못하게 해 사원들이 한복 두루마기 속에 활을 넣고 다니면서 쐈다고 전한다. "일본 사람들이 말려도 듣지 않고 우리는 쐈지요. 우리 고유의 것이니까. 우리가 활을 지탱한 것이지요" '이야기 활 풍속사'에 나오는 인천 관련 대목이다.
▶제94회 전국체전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계양구의 사정 '청룡정'에서 펼친 전국체전 경기에서 많은 사원(궁사)이 조상의 상무정신을 이어받아 마음껏 기량을 뽐냈으리라 생각된다. 활쏘기는 우리가 아껴 육성해야 할 인천의 전통 스포츠다.
/주필
2013년 10월 25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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