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인천 이야기'전(展)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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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3.10.30)
'인천 이야기'전(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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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구 할아버지의 삶. 그 속에 비춰진 인천 이야기 전'이 종합문화예술회관에서 지난 25일부터 내일까지 관람객을 맞는다. 인천시박물관협의회(회장 이귀례)의 전시 기획안이 한국박물관협회로부터 우수 프로그램으로 선정돼 복권기금의 지원을 받아 개최한 것이다.
▶영흥도에서 9남매의 맏이로 태어난 김용구(80·대한노인회 인천남구지회장)옹의 생애를 통해 1930년대부터 오늘에 이르는 격동기의 지역사를 되돌아보고 있다. 동시에 현재의 대한민국을 일궈낸 기성세대의 파란만장한 삶을 재조명해 단절된 세대 간 소통을 꾀했다.
▶김옹의 증언은 생생하다. 영흥도 지세면에서 당시 조봉암농림부장관이 주도했던 '토지개혁'의 현장을 생생하게 목도한다. 일제 때 영흥도의 거의 모든 농지에 마름을 두고 부렸던 친일파 모씨는 '그 섬의 왕' 노릇을 했지만, 광복 후 하루아침에 신세가 역전됐다고 전한다.
▶"토지개혁을 하면서 뺏기고 몰락하고 그런 거지. 그거(땅) 다 나눠주니까. 그 큰 부자가 흔적도 없이 없어졌어요. 핍박하던 사람들이 핍박받던 사람들한테 핍박받고, 그 자손들이 전부 다 피난 가고. 그렇게 살았던 게 우리 농촌이었다."며 급박했던 변혁기의 정황을 밝힌다.
▶소년기에 영흥도에서 나와 인천중학교에 입학했으나 6·25전쟁 발발로 학업을 중단하고 섬으로 돌아갔다가 전쟁의 참상을 겪었다. "전쟁이 얼마나 심했냐 하면 인천상륙작전을 앞두고 인민군이 들어왔다, 우리 해군이 들어오기를 일곱 번이나 해 희생이 참 많았다"고 한다.
▶소나무 껍질이나 풀죽으로 연명하다가 1950년 12월 25일, 축현국민학교에서 제2방위군으로 차출돼 엄동설한에 헛바지 하나 입고 죽을 고생을 해 가며 김해까지 걸었다. 그곳에서 매일 죽창 훈련을 받다가 제주 제2훈련소, 대구 미8군의 노무자를 거쳐 의정부로 가 목숨을 건졌다.
▶전쟁 후, 지방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공직생활을 시작한 뒤 전후 복구기, 민주화·산업화 시대를 거쳐 노인회 남구지회장을 지내기까지 역정과 전시 유물들은 우리 시대를 눈물겹게 증언하고 있다. 청장년 세대의 관람을 권하고 싶다.
/주필
2013년 10월 30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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