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분사(分司) 대장도감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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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3. 8.28)
조우성의 미추홀 - 분사(分司) 대장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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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만대장경은 초조대장경과 속장경이 몽골의 침입으로 소실된 뒤, 1236년(고종23) 당시의 수도였던 강화에서 판각을 시작해 1251년 9월에 완성했다." 이것이 사전에 실려 있는 국보 제32호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강화 경판(京板) 팔만대장경에 관한 상식이었다.
▶지금까지 관련 학자들은 "이 사업은 대장도감(大藏都監)에서 주관했으며, 제주도ㆍ완도ㆍ거제도 등에서 나는 자작나무를 재료로 사용했는데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먼저 나무를 바닷물에 충분히 절인 후 그늘에서 말려 썼다. 대장경은 조선 초까지 강화도 선원사(禪源寺)에서 보관하고 있었다"
▶"해인사로 언제 옮겨졌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현재 1398년(태조 7)에 옮겼을 것이라는 학설이 가장 유력하며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이때 2천여 명의 군인들이 호송하고, 5교 양종(五敎兩宗)의 승려들이 독경(讀經)을 했다."고 말해 왔던 것이다.
▶이에 대해 최근 박상국 한국문화유산원장은 "대장경 각 권 끝의 간행 기록을 모두 조사한 결과, 대장경을 제작한 장소로 기록된 대장도감과 분사(分司) 대장도감이 모두 동일한 장소인 '남해'인 것으로 나타났다."는 내용을 모 일간지를 통해 발표해 비상한 관심을 갖게 했다.
▶그러면서 그는 "1243년 이후 제작에 참여한 정안의 공로를 강조하기 위해 '대장도감'을 '분사 대장도감'이란 이름으로 새로 불렀고, 이 때문에 대장경을 만든 직후 해당 시기의 목판에서 '대장도감' 부분을 '분사 대장도감'으로 고쳤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추정하고 있다.
▶27일 경남 남해군이 마련한 현지 세미나에서는 "육지는 몽고의 기마병이 휩쓸어 섬에서 판각을 해야 했다."는 '강화 판각 입지'와 별로 다를 것이 없는 주장을 폈는데, 이는 상당수 지자체가 경쟁적으로 벌이고 있는 과도한 '역사적 기득권 전쟁'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학자들은 좀 더 설득력 있는 학문적 결과를 내놓았으면 한다. 기휘(忌諱) 자를 책에서 가렸던 선조들의 문자관(文字觀)과 온 정성으로 한 획, 한 획을 쓰고, 판각했던 인문적 엄중성을 간과해서도 안 되겠다. 말이 다른 데 뜻이 같다니 요해가 안 된다.
/주필
2013년 08월 28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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