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평화극장 (퍼온글)
본문
퍼온곳 : 인천일보(13.)
조우성의미추홀 - 평화극장
( 1062 )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북한처럼 국민을 대규모로 동원해 국가적 행사를 치르는 나라를 가리켜 '극장 국가'라 한다.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연극과 흡사하게 권력자들이 엄숙하게 벌이는 연기가 최고 권력의 표현이요, 그 등장 순위가 권력 서열을 나타내는 게 연극과 같아서 붙여진 별칭이다.
/그와는 다른 의미에서 1960년대 인천은 '극장 도시'였다. 광복 후 '사랑의 교실' 등 10여 편의 극영화를 생산한 영화 도시였지만, '애관'을 비롯해 동방, 문화, 세계, 키네마, 오성, 중앙, 대한 등 개봉관과 인천, 현대, 도원, 한일, 장안 등 재 개봉관이 극장 전성시대를 이뤘다.
/그중에 '자유극장'과 '평화극장'도 있었다. 자유극장은 신흥동 대로변에 있었고, 평화극장 역시 송현동 양키시장 못 미처 길가에 있었다. 그 시절 입에 올리기가 버거웠던 준 금기어를 과감하게 극장명으로 차용했던 것은 그를 갈구해 왔던 지역의 소망을 반영한 것이리라.
/그러나 시설은 별로였다. '평화극장'에는 의자도 없었다. 소년시절 필자는 맨땅에 깐 가마니에 앉아 영화를 봤다. 얼마 후 널빤지로 만든 장의자에 죽 걸터앉게 되었고, 1970년대 초인가, 스프링이 튀어나와 금세 엉덩이가 아팠지만 극장용 개인 의자가 설치된 것만 기뻐했었다.
/싼값으로 하루에 영화 두 편을 볼 수 있던 평화극장의 분위기는 늘 평화스러웠다. 동네방네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다들 모여서 '장미는 슬프다'를 보며 울고불고 했으니 말이다. 그러던 대중 문화공간이 어느 날 '미림(美林) 극장'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평화'가 사라진 것이다.
/영업이 부진했던 '자유'도 먼저 문을 닫았다. '자유'와 '평화'가 자취를 감추고 난 뒤, 거대 자본이 만든 'CGV'가 들이닥치자 인천 극장가는 '초토화'됐다. 수년째 옛 간판만 을씨년스럽게 달고 있던 미림 극장이 실버 극장으로 재탄생된다고 며칠 전 본보 기자가 보도했다.
/원도심 재생과 노인복지를 생각한 부활일 터이다. 하지만 기왕 그럴 바에야 애초의 이름 '평화'를 되살리는 것이 어떨까 싶다. '자유'와 '평화'는 본래부터 인천 시민이 지녀왔던 꿈이었다. 도심 한복판에 '평화의 문'이 활짝 열리기를 바란다.
/주필
2013년 08월 23일 (금)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