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지용택(56회) 칼럼/바른 정치와 酷吏(혹리)(퍼온글)
본문
퍼온곳 : 인천일보(13. 8.14)
지용택 칼럼 /
바른 정치와 酷吏(혹리)
/새얼문화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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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司馬遷)이 저술한 방대한 저서 「사기(史記)」는 본기 12편, 세가 30편, 열전 70편, 서(書) 8편, 표(年表) 10편으로 모두 130편에 52만6500여 자에 이릅니다. 본래는 「태사공서(太史公書)」이지만 우리는 이를 줄여 「사기」라고 부릅니다. 이 많은 서책 중에 우리가 즐겨 읽는 것은 열전 70편입니다. 사마천의 열전이 지닌 위대함은 인물 평전으로서 인물들의 사상·의리·절개·충성·의협·화식·위민의식·사회상황 등은 물론 해당 인물의 성격과 인과(因果) 관계에 이르기까지 역사를 일관된 안목으로 바라보고, 명철하게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사마천의 촌철살인과 통찰의 힘은 2000여년이 흐른 오늘을 사는 사람의 가슴까지 뜨겁게 달아오르도록 만듭니다.
공자는 이른바 '소왕(素王)'이라고 존경받지만 출세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사마천은 공자를 제후와 그 가계가 기록된 「세가(世家)」30편 속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공자가 생존했던 시절에는 존경받는 촌로(村老) 정도였을 텐데 말입니다. 더욱 파격적인 것은 왕후장상(王侯將相)의 씨가 따로 있느냐는 기치를 들고, 진시황에 최초로 항거한 머슴 출신의 진승(陳勝)도 세가의 반열에 올린 것을 보면 서민들의 가치관과 그들의 역량을 긍정하는 역사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열전」중에 혹리편이 있습니다. 이것 역시 집권자의 입장이 아니라 백성의 입장과 제삼자의 입장에서 기술하고 있습니다. 당시로서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을 겁니다. 혹리들의 특징은 윗사람의 의중을 파악하고, 그에 맞춰 법망을 교묘히 회피해가며 안 되는 일도 되도록 처리하기 때문에 윗사람의 신임을 얻을 수 있고, 출세도 빠릅니다. 한 무제 때 사람으로 '왕온서(王溫舒, ?~B.C. 104년)'라는 사람이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권세 있는 자는 잘 섬기고, 권력 없는 자는 노예처럼 다루었다. 권문세가에는 사악한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도 모르는 척하지만, 권세 없는 자는 귀한 신분이든 외척이든 할 것 없이 욕보였다."
왕온서에게 걸리면 심한 고문으로 몸이 문드러져 감옥 안에서 죽어 다시 판결을 받아 출옥한 자가 없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후일 꼬리가 길어 죄상이 드러나 오족을 멸하는 벌을 받았습니다. 낭중령 서자위(徐自爲)는 "슬픈 일이다. 옛날에는 삼족을 멸하는 형벌이 있었는데 왕온서의 죄는 오족이 동시에 멸하는 데에 이르렀구나"라고 탄식했다고 합니다. 그의 집에서 천금이 나왔다고 하니 혹리의 표본이라 하겠습니다. 요즘 시대에 왕온서 같은 혹리는 없다지만 이보다 무섭고, 질적으로 더 나쁘게 변형된 혹리들이 있습니다.
국민의 혈세를 졸부가 부모에게 물려받은 재산을 써버리듯 탕진하는 예산집행자, 국민에게 희망과 미래를 제시하지 못하는 정치인들과 공공기관의 책임자들은 앞서 말한 혹리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하늘의 별처럼 많은 혈세를 들여 조성한 4대강 사업이 국민에게 행복이 되는 정책이 아니라면, 이것은 정책의 결과로 비판받기 이전에 이미 혹리인 셈입니다. 바다 건너 일본이 재무장에 박차를 가하는 시국에 우리는 정전 60년을 맞이했습니다. 민족의 염원이자 세계 평화의 초석이 되는 통일의 기반조차 다지지 못하고, 민족 갈등의 골이 더 깊이 패도록 부추기며 정권의 이해관계로만 다툰다면 이 역시 혹리와 다를 바 없습니다.
사마천의 「혹리열전」서두에는 공자의 말씀(위정편)을 인용해 "법으로 인도하고 형벌로 바로잡으면 백성은 형벌을 피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덕으로 이끌고 예로 바로잡으면 부끄러움을 알고 바르게 살아간다."고 말하면서 "진실로 옳구나! 선현의 말씀이여 법령이란 다스림의 도구일 뿐 (백성의) 맑고 탁함을 다스리는 근원은 아니다."고 절규했습니다. 이 말을 우리도 깊이 성찰할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2013년 08월 14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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