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이원규(65회)/죽산 조봉암 선생 54주기에 부쳐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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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3. 7.31)
죽산 조봉암 선생 54주기에 부쳐
완전한 명예회복을 기대하며
이원규는 올 3월 <조봉암평전-잃어버린 진보의 꿈>(한길사)을 6년여 산고 끝에 펴냈다. 인천출신인 작가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 이훈익(향토사가)씨와 동네 어른들로부터 조봉암의 활동상과 사법살인에 의한 죽임을 듣고 자라 죽산 평전을 집필하는 일은 그에게 숙명이었다. 이원규의 <조봉암 평전>은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소설과 르포가 섞인 독특한 형식으로 써내려가 주목을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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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첩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죽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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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죽산 조봉암 선생의 54주기 기일(忌日)이다. 1959년 7월31일, 선생은 서울형무소 사형장에서 숨이 끊어졌다. 평화통일을 주장한 것이 북한 주장과 같다 하여 국가변란죄로 몰아대고, 어거지로 간첩죄를 덮어씌워서 정권이 법의 이름을 빌려 살해한 것이었다. 영구집권에 집착하는 이승만에게 감히 도전해 대통령선거에서 216만 표를 얻은 것이 죄라면 죄였다. 오늘의 아프리카 독재 국가들보다도 못한 국격이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죽산 선생은 인천이 배출한 한국 현대사의 가장 걸출한 인물이다. 출생지는 강화이지만 인천 시민들의 지지를 받아 국회로 진출했다. 초대 농림부장관이 되어 농지개혁법을 입안해 단군 이래 천 년 이상 지속되어온 소작제도를 끝내 버렸다. 그는 건국 초기 어려운 상황에서 신속히 최고수준의 토지균등성을 갖게 한 공로자였다. 자기 땅을 갖게 된 농민들이 6·25 동란 때 북한군 편에 서지 않아 한반도 전체가 공산화되는 것을 막았다고 학자들은 분석한다.
선생은 젊은 날 강화의 3·1 운동에 뛰어들었다가 감옥에 갔다. 공산주의에 빠져든 것은 그 길이 조국독립을 위한 최선의 방편이라고 생각한 때문이었다. 광복 후 우익으로 전향해 건국의 대열로 나섰다. 공산주의 경력이 원죄처럼 따라다녔으나 다른 전향자들처럼 철저한 반공노선을 걷지 않았다. 조국 발전을 위해 유럽식 사회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신념을 갖고 제3의 길을 선택해 책임정치, 수탈 없는 경제, 평화통일을 내세웠다.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일을 없애고 모든 사람의 자유가 완전히 보장되고 모든 사람이 착취당하는 것이 없이 응분의 노력과 사회적 보장에 의해서 다 같이 평화롭고 행복스럽게 잘살 수 있는 세상', 이것이 진보당 창당 개회사에서 그가 말한 정치적 이상이었다.
그는 막장 대결을 하는 정객이 아니었다. 독립운동 시절에도 민족주의 투사들과 연합하려 했고 광복 후에도 좌우익 연합을 위해 분투했다. 그는 말로만 앞서는 진보가 아니라 모순 속에서 가치를 찾아가는 정반합론의 실천자였다.
2011년 1월 대법원이 반세기만에 재심을 열어 선생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은 국가양심의 회복, 국격의 회복과 다름 아니다. 그러나 선생이 펼치려고 했던 정치적 이상은 아직 하나도 해결되지 않았다. 정치는 후진하며 난맥상을 보이고 있고 심각한 빈부의 양극화, 남북한의 첨예한 대립을 보면 더욱 그렇다. 오늘 선생의 존재가 더 커 보이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사형 집행 며칠 전 형무소 접견을 온 윤길중 진보당 간사장에게 선생은 이런 교훈을 남겼다.
"우리가 못한 일을 먼 훗날 우리가 알지 못하는 후배들이 해나갈 것이네. 그러면 결국 어느 땐가 평화통일의 날이 올 것이고 국민이 고루 잘 사는 날이 올 것이네. 씨를 뿌린 자가 거둔다고 생각하면 안 되지. 나는 씨만 뿌리고 가네."
그가 뿌린 씨앗은 어찌되었는가. 아직도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있다. 진보와 보수는 양 바퀴처럼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굴러가고 경제 민주화를 이루고 남북의 대화로써 평화통일을 향해 나아가고 진정한 복지국가를 세우는 것, 그것이 선생의 정신을 살리는 것이다.
사소한 문제가 원인이 되어 유보되고 있는 국가유공 수훈이 금년 광복절에는 꼭 이뤄졌으면 좋겠다. 그것이 진정한 복권이며 부끄러운 역사를 정리하는 국가 양심의 완전한 회복이기 때문이다.
54년 전 죽산 선생의 숨이 끊어진 오늘 오전 11시, 망우리공원 묘소에서 추모식이 열린다. 필자는 검정 옷을 경건하게 입고 거기 갈 것이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인천시장도 가고 인천의 대학생 대표들도 참례할 것이라 한다. 참으로 뜻깊은 일이다. 어두운 시대에 횃불을 들고 광야로 달려나간 순교자 같았던 선생의 넋을 위무하고, 남기신 씨앗을 오롯한 나무로 키워 인천정신으로 계승하고 조국 통일과 번영의 중심이 되는 것이 인천이 가진 사명이기 때문이다. /이원규(소설가)
2013년 07월 31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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