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나치와 일본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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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3.)
조우성의 미추홀-나치와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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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는 천재였다.
한두 해도 아니고, 장장 12년간 독일인을 열광의 도가니에 몰아넣은 대중 설득력 하나만으로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채플린이 흉내 냈던 콧수염, 거꾸로 가른 가리마, 화려한 팔 동작, 카리스마적 군복 등은 이 연설의 귀재가 지닌 소도구였다.
▶그가 국사범으로 란츠베르크 요새 구치소에 수감돼 있을 때 구술했다는 '나의 투쟁'도 "모든 것을 단순화하는 무서운 사람('나의 투쟁' 서석연 역. 범우사)"으로서의 광기어린 천재성을 엿보이고 있는 것이다.
유태인을 극도로 혐오한 '인종론적 세계관'이 그에 속한다.
▶의회 민주주의, 배금사상, 마르크스주의, 볼셰비즘 등은 다 유태인의 세계 지배 음모에서 파생한 것이므로 세상을 바로잡자면 유태인을 처단해야 한다고 그는 단순화했고, 당시 독일의 경제 등 여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유태인을 질시한 독일인들은 '하일 히틀러'를 부르짖었다.
▶유태인을 밀고해 '게토'가 만들어지고, 가슴에 '다윗의 별'을 달게 했으며, 종국에는 아우슈비츠 행 '죽음의 열차'에 오르게 했던 게 독일인 이웃들이었다.
'안네 프랑크'네 같은 생지옥이 도처에서 벌어졌지만, 독일인 다수는 '게르만 족의 위대성 찾기'에 도취돼 있었다.
▶600만명의 유태인들은 히틀러에 농락당한 민중들의 지지 속에서 처참히 죽어갔던 것이다.
가스실에서 실려 나온 시체의 뼈는 갈아 비료를 만들고, 지방은 비누, 머리털은 침대 시트, 치아의 금니는 녹여 무기 공장에 보냈다.
인간의 탈을 쓰고는 할 수 없는 만행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독일이 비로소 이성을 찾아가기 시작했을 때, 그들은 뼈저린 반성을 했다.
그 반성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유태인에 대한 피해보상도 아직 진행 중이다.
내년에는 전후 세대의 '네오나치즘'을 우려해 광기의 책 '나의 투쟁'에 대한 판금조치도 취한다고 한다.
▶현재 독일이 선진국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은 '진실한 반성'을 지속적으로 보여준 데 있다.
반면에 같은 전범국이자 주축국으로 그에 못지않는 잔혹상을 보였던 일본의 부총리란 자는 그 나치를 선망해 세계의 웃음거리로 됐다.
나라에 망조가 든 것 같다.
/주필
2013년 08월 05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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