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모나미 153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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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3. 6. 4)
조우성의 미추홀 - 모나미 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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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후 초등학교를 다녔던 필자 또래들은 연필은 '잠자리표'를 제일로 쳤다. 꾹꾹 눌러 써도 부러지지 않는 것은 '잠자리표'뿐이었다. 옆구리에 예쁜 잠자리가 금빛으로 그려져 있고, 영어로 'TOMBOW'라고 쓰여 있어 그리 불렀던 것인데, 알고 보니 일본제였다.
▶국산연필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1946년 대전에서 동아연필이, 1949년 서울에서 낙타표 문화연필이 생산됐지만, 질에서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국산은 심이 툭툭 부러지기 일쑤였고, 지우개도 깨끗이 지워지지 않았지만 '잠자리표'는 깍지를 끼워 끝까지 쓸 수 있었다.
▶그 무렵, 미군PX에서 흘러나온 '파커' 만년필은 최고급 필기구였다. '파커51'의 명성은 대단했다. 그만은 못했지만, 볼펜도 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볼펜은 "1888년 미국인 '존 라우드'가 원형을 발명했고, 헝가리 출신 '라슬로 비로'가 1943년에 개량한 신식필기구"('20세기를 만든 일용품'. 토쿄 晶文社)였다.
▶그러나 당시의 볼펜 수준은 만년필의 실용성을 뛰어넘지 못했다. 만년필과 같은 격조있는 필기구로도 대접 받지 못했다. 공식적인 서류에 볼펜글씨가 용납된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고, 학생들은 잉크병과 펜을 가방에 넣고 학교에 다녔다.
▶국산볼펜이 선을 보인 것은 1963년 5월1일. '모나미153'이 생산된 날이다. 광신화학공업사 송삼석 회장이 1962년 일본에서 처음 볼펜을 보고 와 기술 전수와 자체개발 끝에 만든 것인데, 한자루에 15원 하는 저가 실용필기구로서 큰 인기를 누렸다.
▶'모나미'는 품질, 디자인,스토리텔링에서 모두 성공을 거두었다. '모나미'는 프랑스어로 '나의(Mon) 친구(Ami)'란 뜻이고, 수수께끼 숫자 '153'은 요한복음에 나오는 베드로의 '물고기와 그물이적'을 나타내는 동시에 제품 생산시기를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최근 국민 볼펜 모나미가 출시 50주년을 맞았다. 그간 36억자루가 팔린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보인다. 뚜껑이 따로 없는 구조의 간편성, 핵심부품인 텅스텐 '볼'의 내구성, 한국의 명품으로 선정된 디자인이 일체가 돼 이룬 성과였다. 그럼에도 고전중이라 한다. 글쓰기를 잊어버린 시대적 증상의 하나같다.
/주필
2013년 06월 05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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