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전기와 백열등 (퍼온글)
본문
퍼온곳 : 인천일보(13. 7.19)
조우성의 미추홀 - 전기와 백열등
( 1047 )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인천은 우리나라 근대화의 선구지였다. 인천 지역사를 잘 모르는 학자들이 흔히 저질렀던 오류 가운데 하나는 이 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노동 등이 다 서울에서부터 시작됐다고 주장한 것이다. 커피의 도입도 궁중에 드나들던 외국인이 전했을 것이라고 돼 있다.
▶국사편찬위원회 간행 '한국사' 제44권 제3장 사회생활의 변동-'의·식·주 생활의 변화'에서도 "고종이 아관파천(1898년)으로 러시아 공관에 있는 동안 익숙해져 좋아했다고 한다. 1902년 손탁이 서양식 호텔을 개업했고, 이곳에서 처음으로 커피를 팔았다"고 기술했다.
▶그러나 이는 최초가 아니다. 개항장 인천에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대불호텔'이 세워진 것은 1883년 개항 직후이고, 1885년 4월 5일 개신교 선교사 아펜젤러 목사 부처가 이곳에서 서양식 음식을 즐겼다는 기록이 아펜젤러의 '선교 보고서'에 또렷이 등장하고 있다.
▶커피는 고종보다 먼저 인천의 내외국인들이 맛을 보았고, 호텔 역시 서울보다 훨씬 먼저 인천에 세워졌던 것이 우리 근대 생활문화사의 풍경이다. 등대, 기차, 우편, 전화, 기상관측, 사이다, 극장, 성냥 등 인천에서 시작된 '한국 최초'를 따지자면 이 난을 다 메워야 할 정도다.
▶그런데 예외가 있다. 전기와 백열등 도입만은 서울이 먼저였다. 미국의 발명가 에디슨이 백열등 제작 특허를 얻은것이 1880년이고 보면, 인천의 무역상사 타운센드 상회가 직접 에디슨사에 주문한 발전기와 백열등이 1887년 인천에 도착한 것은 대단한 사건이었다.
▶근대화에 대한 우리의 열망이 얼마나 컸던가를 말해 주는 예일 터이다. 구한국의 기나긴 밤을 처음 '과학의 불'로 밝힌 것은 1887년 경복궁 건청궁 앞마당에서였고 인천 거리에 백열등이 등장한 것은 1906년 지금의 중구 송월동에 '인천전기주식회사'가 세워진 뒤였다.
▶이 회사는 1910년 말 690가구에 3860 등(燈)을 공급했다. 그 후 백열등은 1960년대까지 온 세계의 밤을 밝혔으나 전력 소비가 많아 형광등에 이어 마침내 LED램프에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 20세기의 조종이 또 한 번 울리는 듯싶다.
/주필
2013년 07월 19일 (금)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