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여러 전쟁'(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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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3. 5.13)
조우성의 미추홀 - '여러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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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는 청소년들에게 대단히 집착했다. 청소년들을 나치즘의 이상에 맞게 교육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앞으로 있을 전쟁의 총알받이로도 필요한 존재였다. 나치 청소년 정책의 근간은 그 두 가지에 맞추어져 있었다. 미래의 핵심적 나치로 성장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테틀레프 포이케르트'가 쓴 '나치 시대의 일상사(김학이 옮김, 개마고원)'에 나오는 말이다. 그에 따르면 청소년들은 전통적인 인문교육보다는 인종주의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오만한 이념의 파편들과 고결한 독일 문화, 복고적인 농업 낭만주의의 열광 속에 방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청소년을 항구적인 권력 유지의 기반으로 삼으려 했던 것은 나치만이 아니다. 일제가 집요하게 추구한 황국 신민화 교육도 마찬가지였다. 황국신민의 서사 낭독, 궁성요배, 근로보국대 참여, 정신대 강요, 교련 강화 등을 통해 그들은 '미래의 신민'을 키워내려 했다.
▶그를 수행하기 위한 대표적인 교재는 교과서였다. 일제강점기 때 각종 교과서의 목차만 훑어보아도 그같은 의도는 쉬 짐작할 수 있다. 음악교과서엔 '군가'가 빠지지 않았다. 청소년들을 앞날의 '가미가제'가 되게 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게 하려는 전초적인 작업이었다.
▶일본의 교과서 중시 현상은 지금까지도 전전(戰前)과 궤가 다를 게 없다. 권부의 핵심층들이 시시콜콜한 내용까지 게재 여부에 간섭하는 것은 그들이 대동아공영권에 버금가는 군국주의적 망상과 오만을 아직까지도 버리지 못한 결과이다. 모두에게 불행한 사태이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아베 총리가 '역사적인 맹인'이라는 점이다. '침략의 정의는 없다'고 세계에 대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아닌 용기'가 그를 반증한다. 청소년에게 역사와 문화를 그릇되게 가르친 나치와 그가 어떻게 다른지도 구별이 안 간다. 그런 그가 이번에 또 사고를 쳤다.
▶"유사 이래 여러 전쟁이 있었고 특히 20세기에는 많은 일반국민에게 피해를 준 전쟁이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어쨌다는 것인가? 전쟁도, 그 희생도 도리가 없었다는 것인가? 나치나 일제 같은 전범의 후예들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
/주필
2013년 05월 13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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