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경제 식민화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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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3. 5.22)
조우성의 미추홀 - 경제 식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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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은행'의 산파역을 맡았던 곳은 인천상공회의소였다. 경제 지역화 운동의 축으로서 역할이 다대할 것으로 여겨 큰 호응을 받았다. 그 결실로 사상 초유의 인천 지역은행이 문을 연 것이 1969년 11월이었다. 산업 자금의 확대 공급, 지역 조성 자금의 환원에 역점을 두었다.
▶더불어 특정 기업에 대한 편중 대출 억제와 중소기업과 지역 주민에 대한 금융대출 등을 추구했으나 영업 부진을 면치 못하다가 1972년 6월 상호를 '경기은행(京畿銀行)'으로 바꾸면서 시장 확대를 꾀했다. 그러나 상호 변경에 대한 인천 지역민의 반감은 그리 크지 않았다.
▶경기도의 수부(首府)는 도청이 있는 '수원'이었지만, 실질적 '수부' 기능은 광복 이후 항구 도시인 '인천'이 감당해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기도경찰국, 경기도관재국, 경기매일신문, 경기도수산협동조합, 경기도병사구사령부 등이 다 인천에 있어 낯익은 이름이었던 것이다.
▶'경기은행'은 수도권 유일의 지방 은행으로서 업무 확장에 주력해 지점망 확대 등 상당한 실적을 올렸으나 영업이 궤도에 오르자 부실한 대출 등 방만한 경영으로 은행장이 물러나는 등 곡절을 겪다가 1998년 김대중 정권에 의해 부실은행으로 낙인찍혀 퇴출 당하고 말았다.
▶'인천은행'을 출범시켰던 '지역경제 활성화 운동'은 그렇게 뜬 구름처럼 사라지고 말았는데, 그과정에서 벌어진 여진이 아직 지역 경제계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특히 잊지 못할 대목은 'BIS 비율'이 낮은 '광주은행'은 살려둔 채 '경기은행'의 목만 조른 정치권의 제 편 살리기였다.
▶인천 지역의 금융을 모조리 퇴출시켜 자존심 마저 짓밟은 중앙 권력에 대해 입 한 번 뻥긋 못한 지역의 무기력 또한 잊을 수 없다. 문제는 인구 290만인 오늘에도 지역은행이 없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이 같은 '인천 식민화 현상'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데에 있다.
▶예를 들어 전국 최고의 수돗물 원수 구입비(t당 124원)를 인천에 부과는 하는 것도 중앙집권적 병폐 가운데 하나이다. 그 같은 불공정을 타개하기 위한 시민적 자각과 상응하는 운동이 기대된다. 시의 물이용 부담금 납입 거부를 지지한다.
/주필
2013년 05월 22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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