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언론 식민화 (퍼온글)
본문
퍼온곳 : 인천일보(13. 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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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성의 미추홀 - 언론 식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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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지역 최초의 국문신문은 1945년 10월7일 창간한 '대중일보(大衆日報)'이다. '대중'이란 제호는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동시에 초창기 이 신문의 편집방향을 암시해 주고 있다. 카프문학의 열렬한 주자였던 임화(林和)의 창간축사를 1면에 비중있게 싣고 있었다.
▶그러나 대중일보는 1950년에 들어와 창간 때의 '계층적' 지향점을 '지역'으로 선회했다. 제호를 '인천신보(仁川新報)로 바꾼 것이다. '지역지'로 가자는 전환점이었는데, 그와는 관계없이 영업부진에 직면해 1957년 7월에 제호를 다시 구 '기호일보(舊ㆍ畿湖日報)'로 바꾸었다.
▶판매지역의 확장을 노린 것이었다. 하지만 경기, 충청, 강원 등지를 감당할 인적, 물적 역량을 지니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시행착오 끝에 구 기호일보는 발행지 '인천'이 '경기도'의 일원임에 착안해 1970년7월 재차 '경기매일신문(京畿每日新聞)'으로 제호를 바꿔 발행했다.
▶그러다가 1973년 9월1일 군사정권에 의해 경기매일신문, 경기일보, 연합신문 3사가 강제 통합당해 지역언론의 싹을 꺾이는 비운을 당했고, 그로부터 15년의 공백기 끝에 통합 당시의 '인천주주(株主)'들이 재결합해 1988년 7월15일 '인천일보'를 창간시켰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앙권력'에 의해 지역언론계가 휘둘려 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방송 사정도 이에서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인구 290만명인 현재에도 FM, TV가 각각 1개국에 불과한데다가 그나마 경영부진으로 허덕이고 있는데, 원천적 요인은 세상에서 두루 아는 바와 같다.
▶지역민의 권력을 위임받아 국정과 시정을 감시, 조정, 견제해야 할 언론이 타의에 의해 성장판을 상실했었다는 것은 결국 시민의 불행이었고, 그간 '언론식민화'에 대해 뾰족한 대응을 하지 못했었다는 치욕스런 얘기가 된다.
▶어쨌거나 형태만 묘하게 달라졌을 뿐, 지역언론 옥죄기는 계속되고 있다. 자본을 앞세운 물량 공세도 여전하다. 이러다가는 지역적 의제 존립 자체가 공염불이 될 지도 모를 상황이다. 지역언론에 대한 자구적 대각성이요구되는 시점인 것이다. 지역언론은 지역의 심장이다!
/주필
2013년 05월 24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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