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정승열(65회) 세상사/고향 만들기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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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3. 6.13)
고향 만들기
/정승열 시인·인천문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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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라오스에서 탈북자 청소년 8명이 강제로 북송되었다는 보도를 듣고, 이들이 북한에 잡혀가서 당할 고난을 생각하며 걱정하는 여론이 들끌었었다. 요즘 박근혜 대통령의 대화 제의에 북한 당국이 응답해 남북대화가 막 물꼬를 트려고 하고 있는 시점이기도 하다.
이래저래 탈북자와 북한, 그리고 개성공단 등 우리 관심을 고조시켰던 남북의 일들을 돌아보다 문득 어렸을 때 아버지가 술에 취하면 곧잘 불렀던 노래가 떠올랐다.
"고향이 따로 있나 정들면 고향이지. 채송화도 심어보세 봉숭화도 심어보세…."
대충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우리는 황해도 곡산에서 6·25 전쟁 통에 월남해 온 가족이다. 나는 고향에 대한 애틋한 기억이 남아 있지를 않아 아버지의 노래를 우리가 살고 있는 인천을 고향으로 삼고 살자는 체념을 토로한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이 아버지의 노래는 가슴에 솟구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어쩌지 못해 술로 달래며, 노래로 달래며 몸부림치는 모습이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아가게 되었다.
사람에게 고향이라는 것이 얼마나 사무치는 그리움의 대상인지는 고향을 떠나 객지 생활을 해본 사람들만이 경험하는 일이다. 그 중에도 고향을 떠나 가볼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사람들의 절망감은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들 만큼 가슴에 큰 응어리로 남게 된다.
이 응어리가 얼마나 아프고 고통이 심했으면 아버지는 누가 시키지도 않은 노래를 혼자 웅얼웅얼 했겠는가. 그러한 아버지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요즘 들어 새로 생기고 있다.
우리나라 현재 새터민 숫자는 2만3350명 쯤 된다고 한다.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여러 가지 사연으로 목숨을 담보로 하고 남쪽을 찾아온 이웃이다. 이들에게 북한은 벗어나야 할 고통의 지역이지만,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우리와 똑같이 북쪽 고향에 대한 그리움만큼은 어쩔 수 없어 고통의 응어리로 가슴에 안고 살아가야 할 형편에 놓여 있다.
우리 인천에도 여러 곳에 새터민들이 새 보금자리를 만들고 남한에서의 새 삶을 꾸려가고 있다. 전쟁 통에 월남해서 맨손으로 새 삶을 일구었던 우리 부모님들과 거의 같은 어려움을 이겨내야만 남한에서의 삶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 짐작된다.
인천은 그나마 이러한 환경의 사람들을 잘 수용해 내는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인천이 개항되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만큼 인구가 늘고 시세가 커지게 된 것은 바로 이런 유민들의 끊임없는 유입으로 이루어져 왔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싶다. 그리고 그들이 인천에 뿌리를 내리며 스스로 오늘의 인천 사람이 되어 갔다는 사실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고향을 떠나 거의 가지 못하는 사람들 중에는 새터민보다 더 큰 고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있다. 다문화가족이라 불리는 국제결혼을 통해 가정을 꾸린 사람들이다. 새터민들은 그나마 말이라도 서로 나눌 수 있지만 언어가 통하지 않는 고통까지 수반한 이 사람들의 한국 생활은 여간 힘들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새터민을 어우르는 일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이들 다문화가족까지 따듯하게 품어주어서 이들의 입에서 "인천은 나의 고향이다"라는 느낌을 넣어 주어야겠다. 지금까지 많은 유민들을 인천에 정착시켜 스스로 인천 사람이 되게 만든 '노하우'를 발전시켜 새터민과 다문화가족들도 스스로 인천 사람이 되도록 우리가 세심하게 배려해 보자.
2013년 06월 13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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