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근·현대문화재 지정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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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3. 6.28)
조우성의 미추홀 - 근·현대문화재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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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금성사 사보를 들춰보니 자랑이 대단하다. 1958년 창업해 이듬해에 국내 최초의 진공관 라디오인 'A-501'을 선보인데 이어 1965년에 냉장고, 1966년에 흑백 TV, 1968년에 에어컨, 1969년에 세탁기를 각각 생산했는데, 모두 국내 최초였다고 기염을 토하고 있다.
▶그럴 만도 한 게 지난 2011년 한국공학한림원이 그 동안 '한국'을 이끌어온 '100대 기술과 주역'을 선정했는데, 금성의 5구 진공관 라디오가 당당히 그 첫 번째로 꼽혔던 것이다. 직사각형 플라스틱 케이스에 찍힌 '골드 스타'와 멋진 '왕관 디자인'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당시만 해도 국내 기술이 부족해 라디오 생산은 엄두를 못 냈고, 중산층에서라면상자 만한 일제 고물 라디오나 미군 PX에서 흘러나온 중파, 단파 겸용 '제니스 라디오'를 듣는 정도였다. 값은 웬만한 봉급쟁이의 3달치 월급인 2만 환이었지만, 미제보다는 저렴한 편이었다.
▶그러나 반응은 차가웠다. 수준 미달의 부품, 열악한 전력 사정 등으로 고전을 면치 못했으나 1961년 박정희 대통령이 새마을사업의 하나로 추진한 '농어촌라디오보내기운동'에 힘입어 '금성'은 연간 13만여 대를 생산하면서 성능 향상을 꾀해 번듯한 제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라디오 한 대 제대로 만들지 못했던 나라에서 산업기술의 총아라고 불리는 자동차를 생산한 것은 눈여겨 볼 대목임에 틀림없다. '포니 정'이라는 별호를 지닌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국민차 '포니'를 탄생시킨 것이 1975년이고, 이듬해 수출까지 하는 신화를 만들어냈다.
▶미제 엔진에다가 드럼통을 두드려 만든 외형을 씌운 '시발 자동차' 등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포니'가 본격적인 '최초의 국산차'로 불린 것은 국산화 비율이 85%에 달하고, 디자인 역시 독자적이었기 때문이다. 외국 업체의 부품을 들여와 조립했던 이전 차와는 달랐던 것이다.
▶이 둘을 포함한 18건의 제품이 보존해야 할 산업유산임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문화재 지정'에는 이런저런 성급함이 엿보인다. 생각보다 흔하다는 것도 이유 중의 하나다. '근대문화재 분과위'는 원천 기술력 여부, 희소성, 산업문화적 가치 등에 좀더 섬세한 잣대를 들이대야 할 것 같다.
/주필
2013년 06월 28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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