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모교 교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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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과 늑대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질 않았다. ‘당신에게 가장 기억 남는 명 강의는?’ ‘당신에게 가장 훌륭한 스승은?’ 얼마 전 전 인터넷으로 한 모임에 회원가입을 위해 답해야 했었던 질문들이다. 그 이후로 이 두 질문은 내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다. 철부지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도 다녔으면 스승의 가르침을 무수히 받았을 터인데 답이 떠오르지 않아 의아했다.
그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천고 76회 동창회에서 졸업 30주년 사은회자리를 마련했다. 삼십년 세월이 흘렀음에도 스물여섯분의 은사님이 참석하셨다. 은사님과 연락 한 번 없었던 나는 은사님도 궁금하였지만 옛 친구들을 만날 기대감이 더 컸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은사님을 만나는 순간 감회는 말로 표현 할 수가 없었다. 그 날부터 스승에 대한 나의 생각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어릴 때 동네 길모퉁이에서 서너 명의 형들이 나를 불러 세우고는 꿀밤 한대를 때렸다. 그리고는 마치 너그러이 봐 주기라도 한다는 것처럼 어서 가라고 하였다. 이유 없이 한 대 맞아 분을 삭이지 못한 채 집에 도착하여 어머니에게 사실대로 말씀드렸다. 함께 그곳에 가서 따져 물을 요량이었다.
분통 터질 일이었다. 어머니는 네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 널 때렸을 리가 없다고 단호하게 선언하시고는 한마디 더 던졌다. 네가 군자처럼 보였으면 때리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나만 때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애들도 다 때리고 그 형들은 지금 옳지 못한 행동을 하고 있다고 말씀 드리려 하였는데 어머니는 더 이상 눈길조차 주시지 않았었다. 물론 그때는 군자의 뜻도 잘 몰랐었다.
살면서 황당한 일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미국 유학시절이다. 홀로 유학을 온 싱글들은 한국 음식을 먹을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주말이면 그들을 자주 집으로 초청해서 한국음식을 요리하여 함께 먹곤 하였다. 주말에 방문하는 친구들이 열 명이 넘기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이 이어졌다. 아니 즐거움 이상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절친한 이웃으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는 뜻밖이었다. 다른 이웃이 나를 욕하면서 하는 이야기는 나 때문에 싱글들을 한 번도 초청하지 않은 자신이 나쁜 사람 같아졌다고 하였다.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날 욕한 이웃의 입장을 이해하게 됐다. 난 그저 싱글들만 고려하였지 잘 지내고 있는 이웃 가족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 정도는 이해 할만하다. 내 말 들을래 아니면 맞을래? 하면서 좋지 않은 짓을 강요하는 속칭 불량배들을 피할 수 없을 땐 정말 마술이라도 부려서 혼내주고 싶었다. 남을 괴롭히는 사람들 등 세상에 없어야 할 사람이 많다고 생각했다. 나쁜 사람만 없어지면 세상은 항상 평화롭고 모든 사람이 행복 할 것이라는 생각했다. 내가 커서 실현 하고픈 세상은 나쁜 사람이 없는 세상이었다.
미국의 가장 오래된 국립공원인 옐로스톤 공원은 넓이가 서울의 약 15배 쯤 된다. 국립공원을 여행 할 때는 그 자연미에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원시림 속에 있는 느낌을 받았다. 여행을 하고 여러 해가 흐른 뒤 옐로스톤 공원에 대한 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TV에서 보았다. 그 공원은 전에는 숲이 더 우거져 있었다고 한다. 아무리 노력을 하여도 숲은 복원되질 않아서 큰 동물인 버펄로 숫자가 줄고 곰도 사라질 위기라고 했다. 초식 동물 보호를 위해 표범을 사냥했고 늑대도 거의 다 죽였는데도 사태는 계속 악화되기만 하였다고 한다.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고, 멸종 위기의 늑대를 복원하여 공원에 방사하기 시작 한 것은 여러 해가 흐른 뒤였다. 늑대가 초식 동물을 해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는 늑대의 멸종 위기에 대한 우려에 묻혔다. 해가 흐르며 천적이 없는 늑대의 개체 수는 늘면서 초식동물들이 잡혀먹기 시작했다. 또 다시 반대편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는데 뜻밖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초식 동물의 개체수가 줄어들자 숲이 우거지기 시작한 것이다. 숲이 우거지기 시작하자 다시 초식 동물의 개체수도 늘기 시작 하였다.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늑대가 숲을 살리고 초식 동물의 개체수를 늘리기 시작 한 것이다. 미국에 있을 때 본 이 TV 프로그램은 내게 큰 교훈을 주었다.
내가 생각했던 나쁜 사람들도 이 세상을 위해 내가 모르는 유익한 역할도 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 자신은 흔히 말하는 나쁜 사람을 겪을 때마다 성장했었다. 괜한 오해를 뒤집어쓰고도 내가 최선을 다하지 못한 점을 찾아 반성하며 스스로 수양하며 성장하였다. 사람에게 상처를 받고는 내가 어리석음을 깨달았다. 의도 하지 않았어도 내가 남을 곤란하게 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어느덧 그리 급하던 성격도 많이 사라지고 차분해 졌다. 상대를 탓하기 전에 내가 부족한 점을 찾는 마음가짐은 어릴 때 어머님으로부터 배웠다.
내게 훌륭한 스승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얼마나 훌륭한지 깨달지 못했던 것이었다. 내게 스승 한 분만을 이야기 하라면 어머니라고 대답하겠다. 하지만 내게 훌륭한 스승을 이야기 하라면 초등학교부터 지금까지 한 분도 빠지지 않고 다 이야기 하고 싶다. 아니 그 뿐이 아니다.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그 사람들, 내게 늑대 같던 그 사람들도 이제 내게는 숲속의 늑대 같은 존재이다. 내게 상처를 주었던 그 모든 사람을 만나 웃으며 손을 마주잡고 이야기 나누고 싶다. “당신은 내 인생의 스승입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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