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모교 교지에서
본문
소년과 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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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내로 가는 큰길을 따라 포플러들이 하늘에 부채질을 하고
조약돌 모아 만든 경계 따라 코스모스가 줄지어 미소 짓는다.
냇물이 흐르는 들판을 지나 바닷가 마을로 가는 소달구지 길과
큰 길과 합쳐진 곳에 동네에서 가장 높은 건물
방앗간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슬이 마르기도 전에 아침공기를 가르며
첫차 올 시간은 아직 먼 큰 길을 혼자 차지하고 신나게 달렸다.
소년이 갑자기 놀라 서서 고개를 높이 들었다.
멀리 뻗은 그 길이 자기 혼자만의 길인 것처럼 소유하던 기쁨을
즐기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 할 틈이 없었다.
방앗간 옆, 바람 길목에 거미가 줄을 친 것이다.
높다란 포플러 가로수와 가로수 사이
찻길 위에 커다랗게 큰 그물을 쳐 놓은 것을 보았다.
거미줄 크기에 놀랄 겨를도 없이
소년은 나무를 오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급한 마음에 돌을 던져 보았지만 허공을 가를 뿐
높이 있는 거미줄에는 다다르지 못했다.
오던 길을 되돌아 ‘하일’ 장터 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다행히 부지런한 동네 어른들이 몇 분 눈에 띄었다.
“아저씨 저기 거미줄에 제비가 걸렸어요.”
어른들은 믿지 못하겠다는 듯 어디냐고 물었다.
방앗간 앞 가로수라는 대답에
보아야 믿겠다는 듯 걷는 둥 뛰는 둥 발길을 재빠르게들 옮기셨다.
소년은 순간 모내기 끝내고 농악 놀이 때 맨 앞에 들고 가던
農 者 天 下 地 大 本 也 가 적힌
그 끝에 멋진 꿩 깃털을 달았던 긴 대나무를 생각 했다.
장터는 다닥다닥 붙은 집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집과 집사이의 벽을 스치듯 누비며 대나무를 찾고 있었다.
새벽에 온 동네가 발칵 뒤집혔다.
어른들도 그 대나무를 찾고 계셨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어느새 소년은
이 사건과 관계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두 어른이 대나무를 들고 그 곳에 도착 할 때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지만,
벌써 많은 구경꾼이 거미줄에 걸린 제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다행히도 대나무가 거미줄에 닿아서
제비가 큰 길 바닥에 내려졌고
어른들이 정성스레 거미줄을 떼어주었다.
소년은 제비가 괜찮은지 궁금했지만
어른들 등 뒤에서 고개를 빼어
이리저리 틈을 찾아 바라 볼 수밖에 없었다.
제비는 살아 있었다.
다만 놀라서 그렇지 분명히 살아있고
제 힘으로 날지 못하고
총총 걸음으로 사람들로부터 멀어져 갔다.
코스모스 사이로 들어간 제비를 더 이상 찾을 수 없게 되자
어른들은 하나 둘 돌아가고
혼자 남은 소년이 포플러를 한참 응시하고는
뒤돌아 천천히 할머니 계시는 집을 향했다.
저녁 해가 포플러 긴 그림자 뉘이며 넘어가고,
몇 몇 집 앞마당에 멍석이 깔리고, 별들이 하늘 가득 총총했다.
어른들은 그렇게 큰 거미줄은 평생 처음 보았다고
여러 번 이야기 하였다.
이제 그 이야기는 동네 아주머니들도 모르는 이가 없었다.
하루 이틀 지나며 그 곳에 들러보지 않은 동네 사람은 없었다.
이야기는 다른 동네에도 다 알려지고
읍내 사람도 더러 아는 이야기가 되었다.
그렇게 큰 거미줄이 어디 있냐고
거짓말이라고 까지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소년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방앗간 근처를 살펴보았다.
그 거미가 살아 있다면 또 그만한 거미줄을 칠 것이다.
그렇다면, 거짓말이라는 이야기도 사라질 것이고,
무엇보다도 그렇게 사이가 멀리 떨어진 가로수들 사이를
어떻게 가로 질러 거미줄을 칠 수 있었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궁금증도 그렇지만 그 거미가
그렇게 커다란 집을 짓고 잘 사는 모습을 보면
지난번의 미안한 마음이 좀 덜 할 것도 같았다.
소년은 그 후로 저녁이면 방앗간 근처에
새로 짓는 거미줄을 살펴보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다. 새로 치는 거미줄 마다
참으로 아름다워 어두워 질 때까지
자리를 떠날 줄 몰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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