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극장값(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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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3. 2.15)
조우성의 미추홀 - 극장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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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제1세대 향토사가인 고일(高逸) 선생은 유저 '인천석금(仁川昔今)'에서 인천부 외리(外里·현 중구 용동)에 있던 '협률사(協律舍)'가 서울 원각사보다 앞선 우리나라 최초의 신식극장이라고 했다. 단층 벽돌집이었던 '협률사'에서는 남사당패의 공연 등이 줄을 이었다고 한다.
▶'신극사(新劇史) 이야기'를 쓴 고 안종화(安鍾和) 선생에 따르면, 훗날 신파극 '육혈포 강도'로 이름을 날렸던 임성구(林聖九) 단장이 '협률사'를 '축항사(築港舍)'로 개명했고, 그것이 1926년에 활동사진 전문관 '애관(愛館)'으로 이름이 바뀌어 오늘에까지 명맥을 잇고 있다.
▶'애관'은 일본계인 '표관', '가무기좌' 등과 경쟁을 벌였는데, 순종이 승하한 직후 '근사인산황동사진(謹寫因山活動寫眞)'을 단독공개하고, 극작가 진우촌과 함세덕이 주축이 된 '칠면구락부'의 '춘향전'을 공연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특기할 것은 우리나라 최초의 발성영화인 '야구시대'를 상영함으로써 인천에서 국산영화 '토키 시대'를 열었다는 점이다.
▶광복후 '뉴스극장'이었던 '동방(東邦)'이 지금의 외환은행 인천지점 뒤에서 영화 전문상영관으로 발족했고, 상인천역 앞에서 '인영(仁映)극장'이 문을 열었다. 1960년대 이후 중구 송학동에 '시민관(市民館)'이 들어선 것을 기점으로 중구에 키네마. 세계극장, 용사회관, 동구에 문화, 미림, 오성, 인천, 현대극장이 생겼다.
▶남구에는 도원, 장안, 중앙극장, 부평구에 대한, 부평극장이 문을 열어 극장문화의 전성시대를 구가했다. '오발탄', '검사와 여선생', '장미는 슬프다', '마부' 같은 국산영화는 물론 '역마차', '하이눈', '베라크루스', '워터프런트', '벤허' 등에 인천의 영화팬들은 흡족해 했다.
▶그러던 것이 TV, 비디오 등이 보편화되면서 극장들이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했다. 현재 동구에는 단 한곳도 없고, 중구에는 오직 '애관'만이 분투 중이다. 거대자본을 앞세운 CGV 등이 지역의 역사가 밴 극장문화를 초토화시킨 지 오랜 것이다. CGV가 서울 등지에서 주말관람료를 1만원으로 올린다고 한다. 영화팬들도 속수무책으로 독과점의 폐해를 당하게 된 것이다.
/주필
2013년 02월 15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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