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이원규(65회) 칼럼/문화지구 해제논란과 우려(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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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3. 3.26)
이원규 칼럼/
문화지구 해제논란과 우려
지역신문에 의하면 최근 인천 중구청장이 개항장 문화지구 해제를 시장에게 건의했다고 한다. 주민대표들도 같은 건의를 했고 시장도 긍정적인 답을 한 모양이다. 인천의 지나간 역사를 생각하고 앞날을 생각하면 그런 일련의 움직임들이 매우 걱정스럽고 안타깝게 느껴진다.
인천 원도심은 한국 최초의 서구식 공원인 자유공원과 외교관들의 연회장이었던 제물포구락부, 제일은행, 18은행, 58은행, 인천우체국, 청관 등 귀중한 근대문화유적을 안고 있다. 이것들은 인천의 문화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소중한 것들이다. 그래서 인천시는 3년전 중구 일대를 개항장 문화지구로 지정했고 서울의 인사동과 대학로처럼 만들려는 마스터플랜을 세웠다. 그러나 그런 도시재생사업은 추진과정에서 효율을 얻지 못해 탄력을 잃어 버렸고, 급기야는 문화지구 해제논의가 나오게 된 것이다.
주민들로선 답답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지난날 번화가였던 중구지역은 이제는 낮에도 사람 왕래가 적다. 해가 지면 손님들의 발길이 끊어져 상가들이 문을 닫고 적막하고 어두운 곳으로 변한다. 여기저기 집을 비우고 떠난 공가들, 상가주인이 세를 놓지 못한 공실들이 늘어만 간다. 주민들이 신도시로 떠나 인구가 줄고 학교마저 떠나려 한다. 구청장과 시장도 주민들의 호소를 듣고 현장을 돌아보면 공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포기하면 안된다. 중구 같이 근대문화 유산을 가진 곳이 이 나라에 또 어디 있는가. 인천에서 대대로 살아 온 필자로선 저 외화(外華)에 빛나는 송도신도시보다 중구 옛거리가 더 소중하다. 생각해 보라. 100년 뒤에 후손들이 송도신도시를 긍지로 여길까, 잘 보존된 옛거리를 자랑으로 여길까. 그리고 외국관광객이 송도신도시를 보러 갈까, 재생사업이 잘 된 중구 개항장 지구를 보러 갈까를.
자치단체장의 돌이킬 수 없는 잘못된 판단의 상처는 멀리 갈 것도 없이 서울시청에서 볼 수 있다. 2008년 서울시는 청사신축을 하면서 문화재위원회의 권고를 무시하고 유서깊은 건물의 일부를 헐어버렸다. 지금 당장은 어떤지 모르지만 30년이 지난 뒤에 당시 관장은 신청사를 지은 치적이 아니라 귀중한 문화유산 일부를 헐어버린 어리석은 자로 기억될 것이다. 인천 중구 개항장 문화지구도 마찬가지다. 훼손한다면 어리석은 이름으로 남을 것이다.
중구의 쇠락은 외지인들의 왕래를 유인할 요소를 제거해 버린 때문이다. 관공서가 앞다퉈 신도심으로 나갔고 금융기관들도 따라 나간 것이다. 시장과 대화한 주민대표들은 알아야 한다. 고도제한을 풀어 1~2층 짜리 옛건물들을 철거하고 높이 짓는다고 손님이 오지는 않는다. 오히려 공실률만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해결책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것에서 찾아야 한다.
중구가 안은 침체로부터의 탈출은 지각의 자동화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보존 아니면 철거라는 이분적 사고를 떠나 상상력을 확장해 보자. 문득 떠오르는 것이 중국 상하이의 신톈디(新天地) 거리이다. 필자는 1980년대말부터 상하이를 여섯 차례 갔는데 옛 프랑스 조계거리가 1990년대에 개발붐을 타고 속절없이 무너져 갔다. 그러다가 2000년대에 들어 옛날 집들과 골목이 보존된 채 관광객을 위한 고급 쇼핑문화거리로 재탄생했다. 지금은 가장 땅값이 비싼 곳이 되었다.
중구의 규제를 풀려면 옛 건물과 골목은 살려 놓고 딴 곳을 더 크게 풀자. 학교가 이사해 나간 자리에 중국관광객들이 좋아할 아웃렛몰을 짓거나, 국일관 같은 극장식 공연장에 태국의 알카에다 쇼나 필리핀의 어메이징 쇼처럼 세계적으로 알려진 명물공연을 과감하게 허가하는 것이다. 그걸 보러 와서 8부두도 보고, 차이나타운도 보고, 개항장 문화지구도 돌아보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송월시장 같은 낙후된 곳은 과감히 개선하되 절대로 옛 모습이 남은 골목길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다른 것을 희생하더라도 보존해야 한다. 주민들은 알아야 한다.
자기 것에 대한 긍지와 애착 없이 아무것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2013년 03월 26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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