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인천각(仁川閣)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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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3. 4. 5)
조우성의 미추홀 - 인천각(仁川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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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공원 '한미수교100주년 기념탑' 자리에 서 있던 '인천각'의 본명은 '존스턴 별장'이다. 중국 상해에서 사업을 벌였던 영국인 존스턴이 산 정상에 높다랗게 세운 여름 별장인데, 향토사가 최성연 선생은 이를 '국내 최초로 스팀장치를 한 건물'이라고 저서에 밝힌 바 있다.
▶이 건물을 한때 '인천의 랜드마크'라 한 것은 외항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때문이라 한다. 한옹 신태범 박사도 생전에 "지금 자연보호헌장비가 있는 곳이 대문이었다. 독일 성관처럼 생긴 별장은 우람하면서도 우아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고 회상한 적이 있었다.
▶그 '인천각'이 광복 후 예식장 등으로 사용되면서 유명세를 누렸던 것은 두루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건물이 언제 없어졌느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어느 책인가에 기술되어 있는 "인천상륙작전 때, 함포를 맞아 회진(灰塵)되고 말았다"는 대목이 정설로 되어 있었다.
▶그 후 6·25전쟁을 겪어 보지 못한 세대들은 그를 금과옥조로 알았고, 일부에서는 "미군이 인천의 아름다운 건물을 무참히 부수었다."며 분개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사실에 근거하지 아니한 감정의 발산이었다. '인천각'을 부순 것은 사실 인천에 사는 우리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인천각의 '연합군 함포 회진설'이 '진실' 행세를 한 것은 전후에 촬영된 '인천각'의 사진이 발견되기 전까지였다. 인천 주둔 미군이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컬러사진을 보면, 건물 전면의 일부가 손상되기는 했지만 '인천각'은 보란 듯이 예처럼 웅자를 자랑하며 서 있었다.
▶사건의 진실은 생존 원로 한 분의 증언에서 더욱 또렷이 밝혀졌다. 광복 직후 '반민특위'에서 활동했던 모 씨가 인천시로부터 '인천각'을 불하 받아 해체해 벽돌, 집기류 등을 모두 매각했다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우리들 앞에서 알게 모르게 사라진 건축물이 한둘이 아니니 부끄러운 일이다.
▶어쨌거나 두번 다시 그같은 우를 되풀이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사전에 그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시 차원의 '근대건축물데이터베이스화'가 절실하다고 보인다. '부산'에서는 이미 그에 대한 작업을 마쳤다는 소식이다.
/주필
2013년 04월 05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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