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지용택(56회)칼럼/불공정과 만물의 영장(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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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3. 4.10)
지용택칼럼 /
불공정과 만물의 영장
"미국 에모리 대학 영장류(靈長類)연구소의 프란스 드발(France de Waal) 소장은 그의 동료들과 함께 흰목꼬리말이 원숭이들에게 돌멩이를 가져오면 그 대가로 오이를 교환해주는 실험을 했다.
그러나 연구자들이 규칙을 바꿔 한 원숭이에게만 맛있는 포도를 주기 시작하자 40퍼센트의 원숭이들이 교환 행동을 중단했고, 심지어 돌멩이를 가져오지도 않는 원숭이에게 포도를 주기 시작하자 원숭이의 80퍼센트가 자기들의 돌멩이마저 집어던졌다. 또 최근에는 개들도 불공평한 대우를 받으면 협조를 거부하고 고개를 돌린다는 사실이 오스트리아 빈 대학 연구진에 의해 관찰되었다."(최재천 '통찰'중에서)
이같은 사례들은 말 못하는 짐승들도 공정하지 못한 것은 참을 수 없어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들은 어떨까요? 아마도 분노와 증오심이 불 같이 일어나겠지만, 다만 가진 힘이 없어 좌절과 체념 속에 하루하루 어려운 삶에 매달리게 되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70억 인류가 모두 평등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아마 없을 겁니다. 그러나 한 국가나 공동체가 존속하기 위해 그 과정이 공정하지 않다면 정부가 가지고 있는 공권력도, 재벌이 가지고 있는 자금력도, 부귀 영화도 소용없고, 소외된 사람들의 불평과 집단 행동에 정당성이 부여될 뿐입니다.
근래 영국의 조세 피난처 반대운동 단체인 '조세정의네트워크'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부자들과 기업이 해외 조세 피난처에 은닉한 금융자산이 32조달러(약 3경 5753조원)에 이르러 드디어 조(兆) 단위를 넘어 경(京)으로 넘어가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런 금액은 사막의 모래알처럼 보통 사람의 감각을 넘어서는 수치입니다.
그런데 이중에는 1970년대부터 2010년까지 한국에서 해외 조세 피난처로 이전된 자산이 총 7790억달러(약 870조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는 1조1890억달러의 중국과 7980억달러의 러시아에 이어 세계 3위에 해당하는 수준입니다. 이 기록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지만, 만에 하나 사실로 밝혀진다면 그동안 국가에 매달 꼬박꼬박 세금을 납부한 선량한 한국 국민들이 얼마나 경악하고 분노할까 걱정됩니다.
국세청에 해외 금융계좌 자산을 신고한 규모는 2011년에서 2012년의 2년 사이에 30조1000억원이라고 합니다. 그 추세가 급상승하고 있는데 이는 빙산의 일각이라고 합니다.
해외지사나 수출입 과정에서 허위 계약서를 만들거나 해외투자 명목으로 재산을 빼돌리는 등 불법적으로 자산을 해외에 은닉하는 수법이 여전히 많이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지요.
국세청에서 밝힌 해외 금융계좌 중에는 합법적인 것들도 많을 테지만 시민들이 이런 발표를 긍정하지 않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어째서 시민들이 이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것일까요? 우리나라 가계부채가 1000조에 달하는 현 시점에서 부를 움켜쥔 사람들의 작태가 이렇다면, 하물며 동물도 불공정에 분노할진대 그 어떤 시민이 부자들을 신뢰하는 시선으로 바라보겠습니까? 참으로 한탄스러운 일입니다.
얼마 전 국민경제의 재판소라 할 수 있는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후보에서 낙마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자진사퇴한 이유가 꽤 여러 가지였지만 그 중에서 결정적인 이유는 해외 금융계좌 운용과 세금탈루 의혹이었다고 합니다. 이 사람은 조세법 전문 변호사 출신이었습니다. "소득이 있는데 세금이 있다"는 상식을 모를 리 없었습니다.
더구나 이 사람은 기자들을 불러 사퇴서를 발표한 뒤 자신은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겠다고 태연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엄청난 부정을 저지르고도 미래의 꿈나무들 앞에 서겠다는 생각은 양심의 타락인지 아니면 지성의 몰락인지 모르겠습니다.
거침없이 학교로 돌아가겠다는 이 사람의 몰골은 앞서 저질렀던 범죄보다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는 더욱 참혹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2013년 04월 10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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