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인천 러시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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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3. 4.13)
조우성의 미추홀 - 인천 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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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서부 개척 당시 금이 발견되면서 너도나도 캘리포니아 등지에 몰려들었던 현상을 일러 '골드 러시'라 한다. 그 수가 무려 25만여명이었다고 한다. 일확천금까지는 아니더라도 부자 꿈을 꾸던 이주민들이 모여 살던 곳이 오늘날 로스엔젤레스, 샌디이에고 등 대도시로 발전했다.
▶미국에 '골드 러시'가 있었다면 대한민국에는 '인천 러시'가 있었다. 이 '러시'는 현재 진행형이다. 캘리포니아의 '금'이 사람을 불러들였듯 대한제국 인천에는 조선팔도 백성들이 개항전까지만 해도 듣도 보도 못했던 새로운 '일거리'가 생겨나 '인천 러시'를 일으키게 했다.
▶인구의 태반이 농사일에 매달려 호구를 걱정할 때, 인천에는 부두, 세관, 측후소, 철도, 등대, 호텔, 영사관, 우체국, 전화소, 정미소, 천일염전, 성냥공장 등이 등장했는데 이는 모두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물이었고, 그에 알맞은 노동력이 필요했던 것이니 인천은 곧 '일자리 천국'이었다.
▶'인천'에 오면 '금'은 없어도 '금'과 다를 바 없는 '일'이 있었다. 그리하여 각처에서 일자리를 구하거나 가렴주구 하는 지방관의 행패를 피해 인천으로, 인천으로 이주해 오기 시작한 것이 어언 130년이 된다. 그러나 이에는 간과해서는 안 될 각별한 뜻이 담겨져 있다.
▶가령 우체부로 종사하는 자는 한자 해독능력의 소유자일밖에 없었고, 부두노동자는 쌀 한가마니를 거뜬하게 질 수 있는 건장한 신체의 소유자, 호텔종업원은 영어나 중국어, 일어 능통자였던 것이다. 사람을 쓰는 데 있어 애초에 출신지는 고려의 대상이 못 되었던 것이다.
▶그가 어느 지역 출신인가로 사람을 평가했던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할 수 있는가로 선택한 근대적 인간관이 도시 형성 초기부터 싹 터 왔다는 것은 인천의 가장 큰 정신적 자산이다. 그래서 인천은 전국 어느 도시에 앞서 보란 듯 망국적 지역색을 졸업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토양이 해불양수적 포용성, 다양성, 역동성을 지니게 했고 그에 따라 인천 이주가 하나의 진취적 꿈으로 자리 잡고 있는지도모른다. 지난 3월말 현재 인천인구가 290만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쉬 멈추지 않을 '인천 러시'이다.
/주필
2013년 04월 12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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