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여자경찰서 (퍼온글)
본문
퍼온곳 : 인천일보(13. 4.19)
조우성의 미추홀 - 여자경찰서
( 1008 )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광복 직후인 1945년 10월 21일, 미군정 당국은 군정청 안에 경무국을 창설했다. 식민지 경찰을 해체하고, 국내 치안을 우리 스스로가 담당케 한 1차적인 조치였다. 이듬해 '경무국'을 확대 개편해 '경무부'로 격상시켰지만, 오늘까지도 그날을 '경찰의 날'로 지켜오고 있다.
▶그때부터 경찰의 역할은 '봉사와 질서'이며, 그를 수행하는 경찰관을 '민중의 지팡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업무분야도 점차 세분화해 철도, 해양, 기마경찰대 등이 속속 출범했다. 특히 사회 혼란기에 따른 여성 피의자, 불량청소년, 미아, 노인 등에 관한 업무도 폭주했다.
▶군정 당국은 남자 경찰관으로는 그 처리가 미진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업무 능률의 향상을 위해 경무부 공안국 안에 여자경찰과를 신설했다. 그 아래 여자경찰서를 두었는데 초기엔 서울을 제외한 제1관구청 인천을 비롯해 제5관구청 대구, 제7관구청 부산 등 3곳만 설치했다.
▶인천여자경찰서 초대 서장은 현주복 경감, 2대는 전창신 경감, 3대는 이윤홍 경감 등이었고, 6·25전쟁 전 신생동에 있던 청사를 후에 중구 중앙동으로 옮겼다. 까만 제복 가슴 한 복판에 커다란 배지를 단 '여자 경찰관'들이 교통정리를 하는 모습은 이색 풍경이었다.
▶그러나 1957년 일반 경찰서와 관할 구역이 중복돼 업무상 지장이 많다는 이유로 여자경찰서 폐지론이 대두됐고, 찬반 여론이 거세게 일기도 했다. 당시 서울대 법대 김기두 교수는 "여성 범죄를 다루기에는 여경의 존립이 이상적"이라며 존치 주장을 앞장서서 말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1957년 7월 26일 대통령령 제1298호에 따라 세계에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여자경찰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까지 여자경찰서가 존립했다면, 세계 경찰의 자랑거리가 아니었을까 싶다.
▶우리나라 여자경찰 창설 68년 만에 최근 첫 여성 치안정감이 탄생했다. 이금형 경찰대학장이 주인공이다. 2013년 말 현재 봉직 중인 7815명의 여자경찰관 가운데 최고위 직이다. 지난 시절 여자 경찰관들의 사회적 기능과 오늘의 세태를 고려해 여자경찰서를 부활시키면 어떨까?
/주필
2013년 04월 19일 (금)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