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비정한 도시(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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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2.12.10)
조우성의 미추홀 - 비정한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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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초기 피사체는 대개 인물이었다. 유럽이나 미국, 일본, 중국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사정이 비슷했다. 조선말까지 어용화사가 그렸던 왕의 초상이 고종, 순종 때에 이르러 비로소 사진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일반 백성이 사진에 등장한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
▶사진의 주제가 인물에서 궁궐, 풍경, 거리로 나서다가 '다큐멘터리' 영역으로 확장해 간 것은 자연스러운 시대적 추세였다. 그 새로운 영상은 정치, 경제, 사회의 혼란과 전쟁 같은 긴박한 상황 속에서 자리를 굳힐 수 있었다. 인천서 벌어졌던 '제물포 해전'도 한 예가 된다.
▶1904년 전운이 감돌자 구미 각국의 사진기자들이 속속인천항에 모여들어 당시 상황을 자세히 촬영했는데 그것이 전 세계에 인천의 모습을 본격적으로 알린 최초의 영상이었다. 지금도 세계 최대 규모의 인터넷 시장인 '이베이(ebay)'에서 당시의 사진들을 쉬 구매할 수 있다.
▶그러나 '다큐멘터리' 사진을 이끈 것은 1936년에 창간된 미국의 사진잡지 '라이프'였다. 전성기 때의 발행 부수가 1천만 부였다고 한다. 필자가 소년기에 보았던 한국판 '라이프'의 부다페스트 사태 사진들은 소련군의 만행에 대한 분노와 함께 전율과 감동을 느끼게 했다.
▶그 사진들에서 생동하는 현장감과 함께 큰 감동을 받았던 것은 사진기자들이 독자를 대신해 죽음을 무릅쓰고 역사의 현장을 증언해 주었다는 점 때문이었으리라. 목숨을 바쳐가며 역사를 기록하려는 그들의 헌신은 그래서 숭고한 기록자로 인류사에 남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뉴욕 지하철역에서 철로에 떠밀린 한기석 씨를 내버려 둔 채 49차례나 플래시를 터뜨리며 사망하기까지의 과정을 촬영한 프리랜서 사진기자의 사진은 추악하기만 하다. '다큐멘터리'라는 가식의 뒤에 숨어서 한 인간의 목숨을 상품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최소한의 구조 노력을 했어야 했다.
▶그 역에 있었던 뉴욕 시민들에게도 마찬가지 말을 할 수밖에 없다. 누구나 일본 도쿄 신오쿠보 역에서 희생한 이수현 씨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적 의무마저 저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그의 죽음을 특종 보도한 신문 역시 사악하다. 비정한 범죄의 도시 뉴욕에서 벌어진 일이다.
/주필
2012년 12월 10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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