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멸종위기'의 서점들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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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2.12.17)
,조우성의 미추홀 - '멸종위기'의 서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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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다리 헌책방거리에서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이 책을 팔던 무렵은 인천 헌책방의 전성기였다. 전후 세상에 흘러나온 희귀서들로 애서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발 디딜 틈 없이 헌책이 쌓여 있던 '글천지 서점'의 서향(書香)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새책방도 여럿이 있었다. 경동사거리에 있던 '박문서관(博文書館)', 싸리재 초입 골목길 안에 들어앉아 있던 '문조사(文潮社)', 그 건너편의 '성문서점(省文書店)', 동인천역의 '대한서림(大韓書林)', 뒤에 동인천 삼화버스 옆에서 문을 연 '한일서점(韓一書店) 등도 성업 중이었다.
▶1970년대 말까지만 해도 인천 서점가는 신구(新舊) 가릴 것 없이 나름대로 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출판계도 훌륭하게 뒷받침을 했다. 학원사가 국내 최초로 백과사전을 펴냈는가 하면 앞서거니 뒤서거니 각 출판사가 내놓은 문고판의 전성시대가 그립게 돌이켜진다.
▶특히 정음사와 을유문화사가 경쟁적으로 출판한 60여 권에 달하는 세계문학전집은 기념비적인 출판물이었고, 학원사의 소년소녀세계문학전집과 학생잡지 '학원', 새벗사의 아동잡지 '새벗' 등은 자라나는 세대들의 지적, 정서적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그런 환경 속에서 인천의 서점가는 큰 무리없이 도생할 수 있었는데, 그 질서를 일거에 무너뜨린 것이 '교보문고'였다. 군소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주안사거리에 지점을 설치하고자 했을 때 인천서적상조합은 사생결단으로 그를 막고 나섰다.
▶그러나 거대자본 앞에 버틸 만큼 체력이 튼튼한 것은 아니었다. 결국 인터넷 할인 판매로 무장한 대형서점들이 들어서면서 인천 서점계는 맥없이 주저앉았다. 끝까지 분투하리라고 믿었던 '대한서림'마저 매장을 대폭 축소하고 말아 씁쓸하기만 했다.
▶최근 한국출판연구소가 전국 249개 시군구 신간 서점 전수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인천 옹진군은 아예 서점이 없고, 강화군에는 단 1개소(청운서점)만 있다는 통계다. 인구수에 관계없이 인천의 새책방과 헌책방 수는 대학진학률과 똑같이 전국 최하위다. 한국서적조합연합회의 통계를 보면 새책방이 167개소, 헌책방이 5개소에 불과하다. 그러고도 '교육과 문화'를 운위할 수 있는지 낯부끄럽다.
/주필
2012년 12월 17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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