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동아'와'웅진'(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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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2.10. 5)
조우성의 미추홀 - '동아'와'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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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중희 상점(姜重熙商店)'이 문을 연 것은 1932년 12월1일이다. 서울 종로 한복판에서 붕대, 탈지면, '거즈' 등 위생재료를 파는 도매상을 차린 것인데, 나라를 잃은 시대였지만 자신의 이름을 상호로 내세우며 출발했다.
▶그러나 일본인의 질시와 차별이 심해 얼마후 상호를 '관부약방(官部藥房)'으로 고쳤다. 강중희는 탈지면 재료를 인천의 한 솜 공장에서 마련했고, 붕대는 일본 오사카의 '야마도야(大和屋)' 등에서 구입했다. 점차 알코올, 빙초산, 얼음주머니, 끈끈이 파리약 등으로 취급품목을 넓혀갔다.
▶1935년에 이르러 '관부약방'은 국내 굴지의 의약품 도매상으로 성장해 일본과 구미의 양약을 취급했고, 1941년 12월 경기도로부터 '매약제조업(賣藥製造業)'을 허가받은 후에는 감기약, 소화제, 피부질환 약 등을 생산했다.(동아제약50년사)
▶그같은 제약 경험을 살려 '관부약방'은 '동아위산', '진해액', '금계랍', '계관' 등을 생산하다가 1949년 8월 회사이름을 동아제약㈜로 바꾸면서 새롭게 도약했다. 1963년에는 지금과 같은 드링크제 '박카스 D'를 선보이면서 국내 제약계의 신화를 써냈다.
▶'대를 이어 같은 유의 사업을 하면서 격식과 신용을 얻은 점포'를 일러 '노포(老鋪)'라 일컫는데, 우리 기업사로 치면 '동아제약'도 노포의 반열에 든다 하겠다. 오늘날의 기업규모를 생각하면 '포(鋪)'와는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말이다.
▶최근 국내 매출 1위인 동아제약이 일본의 유력협력사 '메이지 세이카 파마'와 함께 인천경제자유구역에서 '바이오시밀러' 공장기공식을 가졌다고 한다. 2017년까지 2단계시설도 완공할 것이라는 보도다.
▶'셀트리온'에 이은 쾌거로 바야흐로 인천이 '바이오 메디시티'로서 부상하기 시작했다는 점이 흐뭇하다. 더불어 '동아제약'의 성장세를 보면서 '우물을 파도 한 우물을 파라'는 속담을 떠올린다.
▶책외판에서 시작해 건설, 화학, 에너지, 식품, 금융 등 문어발식으로 계열사를 거느리다가 10조원을 안고 쓰러진 '웅진그룹'의 충격 때문이다. 온갖 분야에서 백년이 넘는 기업들이 즐비한 선진국과 비교하면 우리 기업의 전통은 아직 일천한 수준이다. 제 분야를 꾸준히 닦은 기업만이 승승장구하는 영광을 누린다.
/주필
2012년 10월 05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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