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이런 스타일이 선거 때 나타나는 변신이 아니라 지난 행적에서 면밀하게 검토돼야 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선거를 앞둔 후보들의 변신은 무죄’라고 하지만 과장된 공약과 포장된 인품, 각색된 능력과 공정에 대한 의식 등등은 결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중국 청나라 강희제 때 재상 장영(張英)은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더구나 부동산 가격 폭등이 가져온 오늘의 세상에서 그와 그의 후손들이 보여주는 참모습은 실로 곱..어 볼 만하다.


장영부터 살펴보자. 그가 재상으로 있을 때 고향 집에서 긴급 편지가 한 통 보내졌다. 펼쳐보니 장영의 고향집과 이웃집 엽(葉) 씨네 사이에 담장을 두고 다툼이 벌어졌으니 해결해 줬으면 한다는 내용이었다. 장영은 답신으로 시 한 수를 써 보냈다. "담장 하나 때문에 편지를 보내느냐. 3척을 양보한들 뭐 대수냐. 만리장성은 아직 건재하나 당년의 진시황은 볼 수 없어라."


 고향집에서 이 시를 읽은 가족들은 장영의 뜻대로 바로 담장을 헐고 3척 뒤로 물러났다. 엽 씨 가족들도 이걸 보고 감동했다. ‘재상네가 권세로 억누르지 않고 물러서다니….’ 그래서 엽 씨네 가족도 3척 뒤로 물러나 담장을 쌓아 화답했다. 지금도 안후이성 동성(桐城) 서후가(西後街)에 가보면 ‘육척항(六尺巷)’이라는 골목이 잘 보존돼 있다. 한쪽은 장 씨네 고택이고 다른 한쪽은 엽 씨네 고택이다. 


 장영의 셋째 아들 장정옥(張廷玉)도 대단한 일화가 있다. 그 역시 부친의 후광을 입지 않고 강희·옹정·건륭 3대에 걸쳐 차근차근 진급해 재상이 됐는데 그가 재상으로 있을 때였다. 장정옥의 아들이 전시(殿試 : 과거제도 중에서 최고의 시험으로 궁궐의 대전에서 거행하며 황제가 친히 주관한다)에서 ‘일갑(一甲) 삼등(三等)’에 뽑혀 탐화(探花)가 됐다. 원래 전시는 세 급수로 나눠 인재를 선발하는데 일갑은 장원(壯元), 방안(榜眼), 탐화(探花) 세 명으로 구성하고 이갑(二甲)이나 삼갑(三甲)은 정해진 수효가 없이 상황에 따라서 뽑는 게 당시의 원칙이었다. 


 아들이 일갑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자 장정옥이 옹정제 앞에 무릎을 꿇고서 아들의 등수를 내려달라고 청했다. 옹정제는 "선발하기 전에 그가 경의 자식인지 몰랐다. 짐은 공정하게 인재를 선발한 것이니 전혀 개의치 마시오"하고 고개를 저었다.


장정옥이 거듭 머리를 조아리며 간청했다. "천하에 인재는 아주 많습니다. 폐하가 주관하는 전시는 3년에 겨우 한 번 있는데 모두가 합격자 명단에 오르기를 꿈에도 그립니다. 소신이 이미 높은 관직에 있는데 제 자식마저 고위 벼슬직을 차지한다면 천하의 빈한한 서생들이 나아갈 자리가 없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어찌 재상으로서 편할 수 있겠나이까." 


 옹정제는 결국에 이 청을 받아들여 그의 아들을 삼갑(三甲) 일등(一等)으로 낮춰 벼슬을 내린다. 공정과 불공정, 유대감, 내적 평화, 배려, 진실, 법, 질서 등등이 요란하게 논의되는 세상이 됐으나 가진 자는 더 많이 가지려 하고, 자식에게는 허위 인턴 기록이나 표창장까지 위조해 출세시키려는 풍토가 만연한 오늘이다. 보궐선거라고 하지만 향후 우리 사회를 이끌 대표적 지도자를 뽑는 일이다. 


2021.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