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원현린(75회) 칼럼/신뢰 저버린 지방의회(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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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기호일보(25. 2.12)
신뢰 저버린 지방의회
/원현린 주필(主筆)
원현린 주필
지방의회의 부적절한 행위들이 또다시 비난의 도마 위에 올랐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최근 종합청렴도 하위 28개 지방의회 행동강령 이행을 점검한 결과 의원들의 업무추진비, 여비를 비롯한 공무활동 예산의 부당 사용 등 다수의 부적절한 사례가 있었음이 드러났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했던가. 허탈감에 빠진 주민들이다.
드러난 부정 사례 몇 가지를 제시해 본다. 미확인 회의·간담회 식사비 명목 18억2천만 원, 의정연수 단체복 명목으로 고가 등산복 구매에 1억6천만 원 사용 등 22억3천만 원, 숙박 영수증 조작 허위 청구·과지급 등 4천만 원, 국내 연수 관련 예산 부당 집행 2억3천만 원 등이 부적절한 예산으로 사용됐다 한다. 어쩌면 빙산의 일각일지 모른다. 점검 결과 드러난 부정행위가 이 정도라는 것이다.
우리를 더욱 실망스럽게 하는 것은 지방의회의 청렴도가 일방 공공기관보다 못하다는 점이다. "공공기관 종합청렴도 평가 결과, 타 기관 대비 지방의회의 청렴 수준이 현저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국민권익위 관계자의 평가가 의원들에 대한 마지막 기대마저 무너뜨렸다.
지방의회의 앞날에 대해 심히 우려치 않을 수 없다. 우리 고장 행정은 우리 손으로 하자는 취지 아래 시행된 지방자치다.
무신불립(無信不立), 신의가 없으면 존립할 수 없다 했다. 배신(背信)을 여반장(如反掌)으로 하는 사회다. 시민 삶이 어려우면 지도층에게 귀책사유가 돌아간다. 지방의원 신분은 사회지도층 인사에 속한다. 썩은 나무로는 아무것도 조각할 수가 없다. 성찰(省察)이 요청된다.
선거 시기가 다가오면 너나 없이 "여보게 친구, 선거 출마 안 하나?" 하고 건네는 인사말이 유행할 정도다. 능력 검증 없이 18세 이상이면 공직선거법 제19조에 열거된 ‘피선거권이 없는 자’를 제외하고 누구나 출마할 수 있는 우리 선거제도다.
후보 난립으로 유권자들은 어느 후보가 모시이고 삼베인지 고를 수 없을 정도다. 죄를 지은 전과 여부 등 최소한의 무자격자를 걸러낼 수 있어야 하겠다. 이를 위해 출마 후보자에게 일정한 자격제도를 두는 것도 좋을 성싶다. 선거가 끝나기가 무섭게 상당수 당선자들이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 무효가 되곤 한다. 보궐선거가 있다 하지만 주민들은 또다시 4년을 기다려야 한다.
지자체 시행 이후 배신의 역사로 점철된 우리의 지방의회 역사라 하면 지나친 표현일까? 오죽하면 행정안전부가 지방의회의원 시찰 위주 외유성 출장 방지를 위해 출장 사전·사후관리를 강화한 ‘지방의회 공무국외출장 규칙표준(안)’을 개정해 전 지방의회에 권고했을까.
우여곡절 끝에 시행을 본 지방자치다. 지방의회가 유지되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지방의회 무용론이 거론된 지는 이미 오래다. 지방의원들 하기에 달렸다. 운용 미숙이라면 연구하고 학습해 숙지하면 된다. 하지만 지방의원들의 고질병인 고황(膏황)에 들었다면 불치의 병으로 치유 곤란하다.
내년에는 또다시 지방선거가 치러진다. 본격 지자체가 시행된 지 올해로 30년, 자립(自立)을 의미하는 이립(而立)의 나이다. 기초·광역 가리지 않고 번듯한 청사들은 다 갖춘 지방의회들이다. 하지만 여전히 의정활동은 미숙하고 주민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지방의회의원이 준수해야 할 행동기준을 특별히 규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지방의회의원 행동강령’을 두고 있다. 예산의 목적 외 사용 금지(제5조), 인사 청탁 등의 금지(제6조), 직무와 관련된 위원회 활동의 제한(제7조), 이권 개입 등의 금지·알선 청탁 등의 금지(제8조) 등이 그것이다.
당연한 의무 규정들이다. 하지만 의무보다는 특권만이 몸에 배다시피 한 의원들이다. 마치 ‘법불가어존(法不可於尊,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는 법을 적용할 수 없다)’이라는 고사성어 다섯 글자를 신봉하는 그릇된 의식이 지방의원들을 지배하고 있는지 모른다. 묻지 않을 수 없다.
지방의원들은 과연 가슴에 단 금배지의 무게를 아는지 모르는지.
입력 2025.02.12 지면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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