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태동철(57회)/사회의 기둥이 된 밤나무골 사나이들(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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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산림문학(2025년 봄) Vol57
나를 키운 모교,교목(校木)
인천고등학교, 밤나무
사회의 기둥이 된 밤나무골 사나이들
/태동철 옹진문화원장
푸른 별 지구촌, 아시아 대륙을 향하여 포효(咆哮) 하는 호랑이 배꼽, 인천에 밤나무골이 자리 잡았다. 그곳을 식자들은 율목동(栗木洞)이라 불렀다.
밤나무골에 시대의 영재들이 모여 들었다. 시대는 19세기 황혼기, 시대조류는 서세동진으로 흐르고 있었다. 산업자본의 태동기에 생산된 상품 판로와 원재료 수요조달의 필요는 제국주의적 탈을 힘의 대결, 전쟁이었다.
당시 조선 왕조 500년에 왕자의 난에서 부터 왕권이 흔들렸고, 적손이 절손되니 왕으로 훈련되지 않은 방계자손을 왕으로 모셔놓고 외척, 정파 세도정치에 내정에서 특히 삼정이 무너지고, 외세의 개방 진입에 제대로 대처 못하는 무능에 민란(民亂)이 일어났다. 동양의 맹주 청(靑)나라가 쇠퇴하는 국제 판세에 조선은 타의에 의하여 개방, 개항하게 되는 첫 관문이 제물포 포구였다. 제물포 포구는 밀려드는 외세의 문물과 교역, 산업자본의 흐름에 대처할 인재들이 절대 필요했다. 1895년에 한성외국어학교 인천분교를 개설하여 산업 실무에 필요한 일어, 상업부기, 주산 등 인재를 양성 배출하기 시작한 것이 인천고등학교의 전신이다.
1985년 한성외국어학교 인천분교가 1904년에 인천일어학교로 교명이 변경되고, 1912년에는 인천공립상업학교로, 1946년에는 인천공립상업중학교 6년제 수업으로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를 길러냈다.
1951년 전국적 학제 변경으로 인천고등학교는 3년제 수업으로 한 학년에 상과 2반, 문과 5반으로 7학급에, 전체 21학급 재학생 일천이백여 명으로 개편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금년이 개교 130년이다. 이 역사 속에 밤알 같은 인재들이 39,400여 명 사회에 배출되었고, 그들은 밤알의 영양가처럼 사회 구석구석에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며 국가와 사회의 일원으로서의 역할을 잘하고 있다
2025년 1월 현재 33학급에 800여 명의 재학생이 밤알로 익어가고 있다.
어린 시절, 우리 집 뒷산에는 밤나무가 열 그루 있었다. 봄이면 밤꽃이 옥양목같이 산허리에 펼쳐지고 밤꽃 내음이 코끝을 벌렁거리게 하였고, 여름이면 매미 노래를 자장가로 들으며 밤나무 그늘 아래서 낮잠을 늘어지게 자곤 했다. 가을 소슬바람에 밤알이 뚜두둑 떨어지는 시기엔 새벽녁부터 밤알 줍기에 여념이 없었고, 그 즈음의 마음이 가장 뭉실뭉실 즐거웠다
햇밤을 밥 지을 때 넣으면 그 달달한 맛이 참 좋았다. 어른들은 가을이면 밤처럼 토실해지는 내 얼굴 보고 "너 요즘 얼굴이 고와지고 키도 많이 자랐구나." "좀 있으면 장가들게 생겼네" 하시며 쑥쑥 자라나는 나에게 미소를 지어 주시곤 했다. 그 얼굴들이 새삼 그리워지는 것 보니 그만큼 세월이 흘러 추억마저 아련해지는 듯하다.
밤을 먹으면 곧 장가 들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질 만큼 순수했던 시절이 지나고, 사회진출을 위한 배움터를 찾아 입학한 곳이 율목동에 자리한 인천고등학교이다.
학교에 들어가니 주변 천지가 밤나무 숲이어서 그런지 교목이 밤나무라고 했을 때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밤나무는 뿌리가 깊고 가지가 무성하여 밤송이가 많이 열린다. 어린 시절에는 인식하지 못했으나 고등학생 쯤이 되니 제사상에 반드시 올라가는 제수용으로 밤을 사용한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열매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학교 교목이 밤나무였던 것도 단순히 주변이 밤나무골이어서만은 아니었다고 본다. 이제야 그 의미를 새겨 본다.
밤은 생태적으로 밤알이 땅에 묻혀 싹이 나서 나무가 되어 자란다. 밤을 수확할 때까지 밤나무 씨가 된 밤알은 썩지 않고 그 열매가 열매 역할을 해야 썩는다고 한다. 얼마나 놀라운 생명력인가. 험한 세상을 살아갈 후손을 위해 조상의 음덕이 이어지는 것처럼 밤 알이 한 알의 씨앗이 되었을 때 얼마나 훌륭한 생명력을 보여 주는 지, 그 의미를 높이 보게 된다. 따라서 밤을 제사상에 올려서 조상의 음덕이 뿌리가 되어 자손들에게까지 이어줘야 동기감응(同氣感應) 할 수 있다는 사상은 우리 민족 영혼의 연결 고리이기에 밤의 생태에서 우리 영혼의 뿌리가 느껴진다.
제례 때 지방을 모시는 신주(神柱)도 밤나무로 만든다. 밤송이는 가시붕치라서 스스로 무장하고 난세를 헤쳐 나갈 수 있다. 그래야 밤 알을 보호할 수 있다. 그렇다고 밤알을 싸고도는 것만은 아니다. 스스로 익어서 밤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될 때 세상에 떨어져 나온다. 즉 인고의 껍질을 깨고 나와야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는 철학적 이치와도 맞물린다. 스스로 자신의 작은 세계를 깨치고 일어나야 더 큰 세상을 창조해 나갈 수 있다는 원리다.
또한 밤에는 양질의 영양가가 있다. 단백질, 비타민, 무기질이 만 점이다. 이로 인해 밤은 보양식으로도 사용된다. 쇠약한 어르신에게 밤밥을 해주면 얼굴에 살이 오르고, 기력이 되살아난다. 밤이 가지고 있는 영양소처럼 사회가 필요로 하는 곳에서 일하고 있는 인천고(仁川高)인들의 활약상을 보면 역시 교목이 밤나무인 학교 출신자들 답다는 생각에 동문으로서 자부심을 갖게 된다.
밤나무를 교목으로 정한 학교의 교훈은 '성실(誠實)'이다. 이 의미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성실(誠實)'에는 지행일여(知行一如)의 내용이 담겨 있다. 이런 학풍(學風) 속에 밤알같이 창의적이고 영양가 있는 실력과 지혜로 사회에서 알찬 삶을 살아가라는 철학이 담긴 교훈이다. 이 훈육을 가슴에 품고 있는 덕택에 나는 오늘도 사회적 가치 창조의 일원으로 사회적 책임 완수에 밤알같이 번영, 창조의 정신으로 힘쓰자는 자세를 잃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1950~1970년대 사이에 인고(仁高)에 재직했던 선생님들의 친목회 가 '밤나무 터'다. 이 모임에 총무를 맡으셨던 박동춘 선생님(1953년에서 1965년 4월까지 근무하신 영어선생님)이 밤나무골에 대한 추억담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는 그저 그 어리고 어린 밤나무 짠물 묘목들의 뿌리, 줄기, 가지 와 잎을 흔들어 튼튼히 잘 자라게 했고, 꽃가루 날려 풍성한 알밤, 짠물 씨앗 열매가 쏟아지도록 한 시대를 불고 지나간 그 밤나무 동산에 바람이면 족하다. 그때를 기리며 앞으로 또한 100년 우리 인고의 발전을 기 원하며 늘 감사하며 지낸다.
-인천고 57회 졸업 40주년 기념문집
"남기고 싶은 우리들 이야기" 속에 은사님들의 글 중, 박동춘 선생님의 글, ‘인고여 영원 하라’에서 발췌함. 이 문집은 2002년1월에 발행한 인고 57회. - 1958년 졸업 - 동문들이 펴낸 문집이다
밤나무골의 밤알들이 우리 사회에 어떻게 영양가 있게 살아가고 있나?
공립 상업학교로서 그 시대가 요구하는 쓸모있는 인재를 양성해 온 인천고는 관공서, 회사, 금융계, 실업계, 체육계, 학술계 등 다방 면에 진출한 졸업생들이 사회의 중추적 인물로 성장하여 기여하고 있음을 자랑하고 있다.
특히 1950년대 戰後 전쟁에 지친 시민들에게 활기와 희망을 안겨 준 조선일보 주최 전국고교 청룡기야구대회에서 제8회와 9회 연달아 2회 우승을 힘으로 인천 시민들에게 희망과 미래의 생기를 넣어 준 고단위 영양가 비타민이었다. 또한 인고의 브라스 밴드는 교내 행사뿐 아니라 당시 서울 동대문운동장에서 개최되는 전국야구선수권대회 등 주요 행사에 초대되어 장엄한 연주로 행사의 무게를 빛나게 하여 관중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브라스 밴드 나팔 소리에 맞춰 우승기 들고 중앙로, 신포시장, 경동 사거리, 싸리재, 배다리 거리를 행진하는 늠늠한 인고인들의 모습에서 시민들은 미래의 밤송이를 보았고, 희망을 가졌다. 그 덕분에 대학 진학률이 95%의 향학열과 취업반에서는 100%에 달하는 취업 성과를 거둘 수 있었고, 결국 그렇게 성장한 인재들이 사회에서 그 능력을 발휘하고 있음이 인고 밤나무골 밤송이들의 결실이자 자긍심이 되었다.
지급은 그 밤골에는 인천정보산업고등학교가 자리 잡고 미래 사이버 세계에 대비한 교육에 열중이며, 당시의 밤나무골 밤송이들은 1971년에 주안 넓은 터로 이전하여 문학동, 학익동, 만수동, 장수동, 연수의 밤밭이 되어 미래의 밤알들을 길러내고 있다.
어린 시절 고향의 뒷산 밤나무가 나를 살찌워 건실하게 자라게 하였듯이 인고(仁高) 밤나무골의 '성실한 知行一如의 학풍'은 지금도 내 가슴에 새겨져 있다. 앞으로도 건강하게 사회적 가치 창조에 일조하며 밤씨가 건장한 나무를 키워 토실한 열매를 맺듯이 후학들에게 귀감이 되는 밤알이 되고자 노력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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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동철 인천고 57회 졸업. 동아대졸업, 중앙대학교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 수료. (사)한국산림문학회 회원. 시집 ‘내 사랑 영흥도’ ‘족보의 바다’ ‘팔미도 벼랑’ 외. 한국해양문학상, 여수해양문학대상. 계간문예작가상 수상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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