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원현린(75회) 칼럼/불신(不信)의 시대(퍼온글)
본문
퍼온곳 : 기호일보(25. 3.26)
원문...
https://www.kiho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37394
불신(不信)의 시대
/원현린 주필(主筆)
원현린 주필(主筆)
우리 사회 불신 풍조가 극에 달한 지는 이미 오래다. 믿음이 없으면 사회는 지탱할 수 없다. 정치권이 양극화되면서 서로 간의 ‘불신(不信)’이 불치의 병이 되고 있다. 법 체계상 최상위법인 헌법마저 부정하는 정치권 인사들이다. 24일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 소추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선고가 있었다. 예상대로 탄핵을 소추했던 측은 기각되자 헌법기관인 헌재의 선고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는 모양새다.
새삼스러운 반응이 아니다. 인용이든 기각이든 둘로 갈라진 진영의 반응은 예정돼 있었다. 삼권분립(三權分立) 정신은 아예 잊은 정치권이다. 입법부는 사법부를 압박하고, 사법부는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는 사실을 왕왕 잊는 듯하다. 이마저도 무너진다면 우리에게 민주주의의 앞날은 기대키 어렵다. 사법부 판단이라 해도 자신의 진영논리와 결과가 다를 경우 승복은 없다. 오직 자신의 판단이 옳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결과에 "사법 판단을 믿을 국민은 없다"며 ‘국민’을 소환하곤 한다. 이는 송(宋)대의 명판관 포청천(包靑天)을 불러 판결을 내려도 불복하기는 마찬가지일 게다.
정(政)은 정(正)이라 했다. 정치는 바르게 다스린다는 뜻이다. 자신이 바르지 않고 어찌 바른 정치를 펴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곧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이 내려진다. 이마저도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또다시 혼란에 빠져들게 된다. 무질서와 혼란뿐만 아니라 정치적 무관심(Don’t Know)도 독재 출현을 가능케 한다. 이는 우리 헌법 제1조 "①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조항마저 무력화시킨다. 거기에 더해 헌법 전문에 표현된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라는 문구는 한갓 잘 다듬어진 미문에 지나지 않게 된다.
‘신뢰(信賴)의 원칙’마저 깡그리 무너진 우리 사회다. 신뢰의 원칙은 독일 판례에서 성립된 이론으로, 자신의 주의의무를 다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로 주의의무를 다하리라고 믿어도 좋다는 원칙이다. 동양에서도 믿음을 앞세웠다. 자공(子貢)이 공자(孔子)에게 정치에 관해 물었다. 공자는 식량을 풍족하게 하고(足食), 군대를 충분히 기르고(足兵), 백성의 믿음을 얻는 일이다(民信)라고 말했다. 자공이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한다면 무엇을 포기해야 하냐고 물으니 공자는 식량과 군대를 포기하더라도 믿음 없이는 나라가 서지 못한다(民無信不立)고 답했다. 격세지감(隔世之感)이 든다. 믿음의 개념도 변하는가. 하기야 성직자들도 때로는 내세의 존재 여부를 놓고 믿음에 회의를 품기도 한다고 한다.
국토는 분단됐고 국민 의식도 양분됐다. 대화를 통한 소통은 막히고 반목과 질시로 날새기가 일쑤다. 한마디로 불신의 시대, 배신의 시대다. 우직하지만 차라리 ‘미생지신(尾生之信)’을 믿음의 덕목에 추가하고 싶어지는 오늘의 불신 풍조다.
미국의 경제학자 J.K.갈브레이드가 「불확실성의 시대(The Age of Uncertainty)」에서 "전세기(前世紀)에서는 자본가는 자본주의의 번영에, 사회주의자나 제국주의자는 각기 사회주의와 제국주의의 성공에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확실성은 지금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전세기의 확실성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 오히려 우스울 정도"라고 평한 지 반세기가 흘렀다. 우리는 여전히 불확실한 사회를 살고 있다.
기회 있을 때마다 혈맹을 강조하던 한미관계다. 미국이 한국을 ‘민감국가(Sensitive Country)’로 지정하면서 한미동맹(韓美同盟)이 위기에 처했다. 한국이 미국의 민감국가 명단에 오른 이후 사안마다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 고위 당국자들은 ‘한국에서의 불확실성이 그 이유’라고 보고 있다.
개인 간이든 국가 간이든 상호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 지 오래다. 우리는 지금 불확실성의 시대 속에 ‘불신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신뢰 회복 없이 건전한 사회로 나아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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