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오피니언
조우성(65회) 미추홀/이민사박물관 특별전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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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2. 6.15)
조우성의 미추홀-이민사박물관 특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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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공식 이민은 인천항에서 출발했다. 내리교회 신도를 중심으로 한 121명의 이민단이 하와이에 도착한 것은 1903년 1월13일. 한 달여의 항해 끝에 그들은 사탕수수 농장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이민 1세대들이 가혹한 환경 속에서 맨처음 한 일은 교회와 학교의 건립이었다. 보상받을 기약도 없는 '독립공채'를 사 임시정부를 도운 것이나 군사훈련하며 본토 수복을 꿈꿨던 것도 이민사의 자랑스런 대목이다.
광복 후, 현지 한인기독학원 부지 매각 대금을 '인하공과대학(현 인하대)' 건립의 종자금으로 보낸 것은 또 아름다운 지역애의 귀환이었다. 교육만이 나라와 겨레를 구할 수 있다는 간절한 염원의 실현이기도 했다.
1966년 3월부터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간호사 파독(派獨)과 1963년 12월부터 1977년 10월까지 이어진 광부 파독(총 7천936명)도 우리가 결코 잊을 수 없는 휴먼 스토리이자, 한국 현대이민사의 중요한 장이다. 1960년대 당시 간호사와 광부들의 '독일행'은 그 자체를 행운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고 한다. 의료적 전문성과 경험을 가진 여성들이 독일 간호체계 상 허드렛일을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대졸자가 대부분이었던 파독 광부들 또한 늘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는 사투를 벌였다고 전한다. 그러나 그들이 동포사회를 형성해 오면서 양국 발전에 끼친 영향이 크다는 것은 학계 공통의 인식이다.
한국이민사박물관(관장 김경언)이 개관 4주년을 맞아 '젊음, 독일행 비행기에 오르다'란 제목으로 특별전을 열고 있다. 13일의 강연과 개막식에 는 연세 지긋한 수십 명의 파독 광부, 간호사들이 참석해 "대한민국 역사상 전문직 인물들이 해외에 도움을 준 최초의 사건"이었다는 '파독 이주사'에 대한 평가를 다시금 떠올리게 했다. 이번 특별전이 향후 한국이민사박물관이 유럽관, 아시아관 등을 설치해 나가는 데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객원논설위원
2012년 06월 15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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