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L-BEING!
끼니 거르고 야근하고 술마시는 당신
작성자 : 최영창
작성일 : 2010.01.28 10:35
조회수 : 1,645
본문
- 연구소 등에 실험기자재를 납품하는 중소기업 대표 최모(48·서울 양천구)씨는 "요즘에는 무엇이든 잊어버린다"고 말했다. 출근하면서 휴대폰을 두고 나가고, 지하주차장에 내려가면 어젯밤 차를 어디 세워놓았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114에 물어본 전화번호는 끊자마자 잊어버린다. 최씨는 "이러다가 아이들 다 키우기도 전에 치매에 걸릴까봐 걱정된다"고 했다.
- ▲ 중ㆍ장년층은 대부분 일시적인 기억상실증을 경험한다. 노화와 음주, 스트레스가 뇌세포를 손상시키기 때문이다. 건망증을 방치하면 뇌가 더 빨리 퇴화돼 노년기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 신지호 헬스조선 기자spphoto@chosun.com
- ◆노화와 음주가 뇌 기억세포 협공해 발생
중년층 이상은 너무 당연한 것이 갑자기 생각나지 않는 '일과성 기억상실증'을 누구나 경험한다. 이재홍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는 "흔히 건망증이라고 하는 일과성 기억상실증이 30~40대의 젊은 나이에서 발생하는 것은 20대에 최고에 달했던 뇌 기능이 노화 시작과 함께 저절로 위축되고 있는 상황에서, 과음과 흡연 등으로 뇌세포와 뇌혈관 손상을 가속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잘못된 생활 습관이 기억력에 미치는 악영향은 일반인의 짐작보다 훨씬 크다. 특히 술이 '기억력 최대의 적'이다. 알코올은 기억 세포를 파괴하며, 동시에 뇌혈관을 손상시켜 뇌가 기억을 저장할 때 사용하는 에너지의 공급을 방해한다. 뇌는 전체 체중의 2%에 불과하지만, 심장에서 박출되는 전체 혈액의 17%가 흘러들어가며 체내 산소의 20%를 소모할 만큼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기관이다.
일과성 기억상실을 호소하는 사람은 과중한 업무 등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다. 우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졸이 뇌의 기억 세포를 손상시킨다. 또, 성인의 기억력은 한정되어 있는데 과도한 정보가 입력되면 뇌는 '어제 만난 동창 이름' 등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정보부터 지워버린다. 바쁘다는 핑계로 식사를 거르면 기억력은 급속히 나빠지고 회복되지 못한다. 포도당이 뇌에 제대로 공급되지 않으면 뇌신경세포끼리 정보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서 뇌에 정보가 들어와도 기억으로 전환하는 처리 작업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 기억력이 정상인 20대 남성의 뇌(왼쪽)와 건망증이 심한 70대 남성의 뇌를 MRI로 촬영했다. 70대 남성의 뇌는 신경세포가 파괴된 곳(검은색 영역)이 많아 주름이 심하고 용적도 줄어들었다. 길병원 뇌과학연구소 제공
- ◆여성호르몬 부족이나 초기 뇌경색일 수도
일과성 기억상실을 일으키는 요인은 잘못된 생활 습관 외에도 다양하다. 김탁 고대안암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술, 담배를 하지 않고 스트레스도 별로 받지 않는다는 중장년층 여성도 흔히 건망증을 호소한다. 이는 폐경으로 여성호르몬 분비가 중단돼서 나타나는 증상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2007년 미국국립보건원(NIH) 발표에 따르면, 호르몬 분비 이상으로 40세 이전에 폐경이 된 여성의 다수가 건망증을 동반했다.
멀쩡한 기억력을 자랑하던 사람이 어느 날부터 갑자기 일과성 기억상실 증세가 빈번하게 나타나면 초기 뇌경색을 의심할 필요도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연구 결과, 일과성 기억상실 환자 10명 중 4명이 초기 뇌경색으로 나타났다. 이런 환자의 뇌를 자기공명영상(MRI)으로 찍어 보면 해마에서 하얗게 보이는 반점이 많이 관찰된다. 이는 피떡(혈전)이 해마 부위의 혈관을 막아서 나타나는 초기 뇌경색 증상이다.
약국에서 쉽게 사 먹는 감기약도 일시적인 건망증이나 기억력 감퇴를 가져올 수 있다. 감기약에 포함된 항콜린제는 해마에서 학습이나 기억에 관계하는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의 방출을 막아 기억력을 떨어뜨린다. 그러나 감기약을 끊으면 기억력은 돌아온다.
◆건망증 방치하면 나이보다 10년 일찍 퇴화
일과성 기억상실증을 대수롭잖게 넘기면 안된다. 우종민 서울백병원 정신과 교수는 "잘못된 생활 습관을 방치할 때 기억력이 받는 악영향은 일반인의 상상보다 훨씬 크다. 불규칙한 생활과 과음을 지속할 경우, 기억력 감퇴는 정상보다 2~3배 이상 빠르게 진행돼, 30세는 40대, 50세는 60대에서 나타나는 건망증이 생긴다"고 말했다. 술을 지나치게 마시면 단순한 건망증에서 알코올성 치매로 발전할 수 있다. '기억 저장소'인 해마를 알코올이 영구적으로 마비시키고 뇌신경세포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이재홍 교수는 "기억력 감퇴는 본인 노력으로 얼마든지 개선할 수 있다"며 "좋은 기억력을 유지하는 것은 노년 이후 정신적인 삶의 질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만큼 젊을 때부터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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