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사랑
[自然과 環境] 떠나는 철새와 죽어가는 숲, 그리고
작성자 : 이동열
작성일 : 2006.12.18 20:31
조회수 : 5,717
본문
떠나는 철새와 죽어가는 숲, 그리고 | ||||||||||||||||||
[nomad의 길을 따라 109] 사라져가는 철새 | ||||||||||||||||||
2006/12/4 | ||||||||||||||||||
정미경 기자 forest@ngotimes.net | ||||||||||||||||||
언젠가, 불타버린 둥지 주변을 맴돌며 구슬프게 우는 비둘기를 본적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 부화한 새끼 비둘기가 기다리고 있었을 둥지는 흔적 하나 없이 사라졌지만, 비둘기의 애절한 맴돌이는 끝도 없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어요. 그것을 지켜본다는 것은 참으로 가슴 저미는 참척의 고통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국경도 없고, 소유도 하지 않으며, 더구나 축적이라는 걸 아예 하지 않는 새들의 생활습성에 매료당하는 나는, 그 때문에 새들을 '진정한 노마드' 라고 부르고 있어요. 알에서 부화하자마자 처음 본 물체를 평생 어미로 생각하고 졸졸 따르는 '각인본능', 그것은 세상이 어떻게 변하더라도 언제나 한결같은 첫마음 바로 그것입니다. 그 마음은 자신의 뼛속까지도 비우는 간결함이기도 하지요. 그리움이 솟구쳐 올라 도무지 참을 수 없을 때, 벗들을 불러 모아 긴 여행을 떠나려는 철새들에게 있어 고향은 우리가 생각하는 단순한 고향이 아닙니다. 노련한 우두머리 새의 향도로 V자 대형을 이루면서 떠나는 저들의 여로는 참으로 장관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힘찬 날개 짓, 그것은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사실상의 모험이기도 합니다.
날개짓으로 발생시킨 소용돌이 기류는 곧 상승기류로 바뀌어, 뒤따르는 새들로 하여금 바람의 영향을 최소화하게 할뿐만 아니라, 순간순간의 기압배치를 선택함으로써 에너지를 적게 쓸 수 있게 하는 가장 자연적인, 때문에 가장 효율적인 비행방법이기도 하지요. 이렇게 하여, 대자연의 오디세이는 그 대단원의 서막을 열어갑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그 무슨 낭만이니, 풍류니 하는 것 하고는 아무런 인연이 없어요. 수 천m 상공에서, 하루에 몇 백Km를 잠까지 줄이며 날아가는 저들의 여로는, 한마디로 험난하기 짝이 없는 고난의 행군입니다. 간혹, 지상에 내려와 먹이를 보충하기는 하지만, 사막과 바다를 건널 때는 오로지 비축된 지방분만으로 날아야 하는 절대 절명의 생사를 건 여로 바로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낮에는 태양과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가야할 길을 판단하고, 여명이나 일몰 때는 편광을 측정하여 갈 길을 선택하는 저들의 여로는, 그래서 보통의 용의주도함으로는 엄두도 낼 수 없는 모험이기도 합니다. 밤의 여로는 오로지 별빛을 헤아리며 자기가 가야할 길을 매순간마다 결정해야 하는, 외롭고 힘겨운 날개짓이라고 아니 할 수가 없어요.
자외선 감지와 미세한 진동에 대한 반응, 그리고 정교하기 짝이 없는 시각, 섬세한 후각 등과 같은 예민한 초감각 능력과 더불어, 방향을 판단할 수 있는 여러 측정수단은 제아무리 그것이 정교하더라도 망망대해보다도 더 오리무중과 같은 하늘에서 정확한 방향을 오류 없이 알려 줄 수는 없는 법. 단하나, 저들의 판단착오를 수정해 줄 지구자기장이 있어, 밤낮을 쉬지 않고 자기의 길을 거리낌 없이 날수가 있습니다. 새들은 이러한 모든 측정치를 비교·분석·종합하고, 마지막으로 지구자기장의 도움으로 한 치의 오류 없이 자기의 목적지를 찾아낼 수 있어요. 지구자기장. 그것은 지구발전기라 부르는 지각 깊숙한 곳에서 끊임없이 요동치며 유동하는 외핵이 발생시키는 경이로움의 극치입니다. 남북을 가로질러, 파동형태로 형성되는 지구자기장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를 발생시키고 유지시키며, 그것을 보호하는 절대적인 생명 보호막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것이 지구 전체를 덮고 있어, 우주로부터 날아오는 유해하고, 치명적인 방사선을 차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사라진 화성의 운명은 이러한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어요. 물의 흔적, 더욱이 바다의 흔적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방사선 피폭에 그대로 나출된 화성에서는 지금까지 그 어떤 생명체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하니 말이에요. 그러므로 지구자기장은 생명의 근원적인 조건으로 되고 있습니다.
새들은 자기의 몸 안에 생체자기를 지니고 있어, 지구자기장과의 상호반응으로 별 사이를 그렇게 날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미 품에 안겨 있는 것으로 부족하여, 한참을 둥지 속에서 지내야 하는 새들의 나약성이 지구자기장과 공명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외경심으로 저들을 대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밤하늘의 감히 헤아릴 수도 없는 은하의 흐름 속에서 좌표가 되는 별을 찾아낸다는 것도 그렇거니와, 제아무리 지구자기장과 감응하는 생체자기를 가졌다 하더라도, 해마다 변해가는 자기장의 극(極)을 계산하면서 정확하게 착지점을 찾아낸다는 것은 아무리 상상을 해도 보통 신비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구자기장의 보호아래 있는 모든 생명체 중에서도 유독 새들만이 그것을 예민하게 알아차린다는 것은 무언가 특별한 그 무엇이 있지 않고서는 참으로 이해를 할 수가 없습니다. 엄청난 중력과 힘겨운 날개짓으로 만들어낸 미세한 부양력 사이를 정확하게 날아가는 것은 정말이지 경이로움 그 자체이지요. 그러므로 새들은 지구별의 이상을 알려주는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해마다 철새들의 서식처가 줄어들고, 줄어든 서식처마저 불안한 환경으로 바뀌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미래를 참담하게 하는 불길한 예보입니다. 무리생활을 기본으로 하는 철새들의 서식처가 줄어든다는 것은 산업화의 속도가 이미 임계점을 넘어섰다는 것을 뚜렷이 보여주는 일례입니다. 서식처의 불안한 환경은 그 산업화가 인간에게로 향하고 있다는 징표로도 됩니다.
철새가 없는 갯벌과 하구, 그리고 드넓은 평원은, 곧 있으면 사람도 살수 없는 불모지로 황폐화될 수밖에 없는 암울한 미래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요. 새가 없다면 밤하늘의 별은 사실상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해거름의 어스름한 구름사이를 가로질러 날고 있는 새가 없다면, 우리에게 밤도 없습니다. 무리지어 군무를 추는 철새가 없다면, 우리의 존재는 이미 아무런 가치를 지닐 수가 없습니다. 새들이 사라진 숲이야 말로 죽어가고 있는 숲이기 때문입니다. 아니 이미 죽은 숲이지요. 그 숲은 단지 나무공장에 지나지 않습니다. 새들이 떠난 갯벌과 하구, 평원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흐르는 강물, 고즈넉한 호수, 가슴마저 물들이는 땅거미에 갇힌 새들의 퍼득거림이 없다면, 지구별은 언젠가 화성의 운명을 뒤따를 것이 분명합니다. 새들은 지상과 천상, 과거와 오늘, 그리고 오늘과 미래를 이어주는 진정한 메신저이기 때문입니다. 새들은 나와 당신을 잇는 오작교입니다.
지구자기장에 감전되어, 비로소 자유로움을 날고 있는 새가 있어, 나와 당신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새는 자유를 알게 할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고독을 알려주는 자유로움입니다. 새가 없으면 우리는 결코 고독을 알 수가 없습니다. 고독하지 않으면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새들이 떠나려하고 있습니다. 그 새들이 둥지를 옮기려하고 있어요. 인간성이 사라져가기 시작했다는 전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새들이 사라지는 날, 지구별은 그저 광활한 공동묘지일 뿐입니다. 강은 썩은 물이 흐르다가 그것마저 마를 것이며, 결국 해저(海低)마저 갈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구별은 푸르른 빛을 이미 잃었습니다. 소리마저 멈출 것입니다. 제아무리 방주를 띄운다한들 그때는 아무 소용이 없게 될 것입니다. 꿈을 꿀 수 없기 때문입니다. |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