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5일은 역사적인 인천상륙작전이 감행된 날로서, 올해로 56주년을 맞는다. 북한공산군의 기습 남침으로 우리 군은 사전에 아무런 대비도 못한 채 병력과 화력의 일방적인 열세로 후퇴에 후퇴를 거듭했다. 남한의 대부분이 북한군의 수중에 들어가고 국군은 겨우 영남의 일부분만 유지한 상태에서 낙동강 전선에서 최후의 방어선을 펼쳐놓고 일진일퇴를 거듭, 한반도가 적화통일 일보직전의 상황에 놓여 있었다. 이러한 국가존망의 위급한 상황에서 한국전쟁을 일순간 역전시킨 작전이 이곳 인천지역에서 감행됐다는 사실은 매우 뜻깊고 남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미국 극동군사령관 맥아더장군은 서울이 함락된 이튿날인 6월29일 아침에 동경에서 수원 비행장으로 날아와 서울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서 전선을 시찰했다. 그는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서는 미국 극동군의 투입이외에 방법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인천상륙작전을 계획했다. 그러나 워싱턴 군 수뇌부는 인천은 사투를 벌이고 있는 부산에서 240㎞나 떨어져 있어 병력을 투입하는 것은 연합군병력을 분산, 전선약화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었다. 특히 심한 조수간만 차이 등 인천의 지리적·지형적·해상적 조건을 이유로 인천상륙작전을 반대했다.
그러나 맥아더 장군은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할 경우 단기간에 서울 탈환이 가능하다는 주장을 폈다. 수도 서울 탈환은 전략적·정치적·심리적으로 대단히 중요하며, 아울러 북한군의 보급선을 차단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나아가 제8군과 호응해 북한군을 포위 섬멸할 수 있다는 군사전문가로서 일관된 승리에 대한 굳은 신념과 집념으로 워싱턴 군 수뇌부를 설득, 결국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했다.
그러면 왜 인천이 전략상 지형적으로 불리한 여건임에도 불구하고 상륙작전지역으로 결정했는가 하는 점이다.
인천상륙작전이 개시되기 이전에 군산, 인천과 군산의 중간에 위치한 평택군 포승면, 주문진 등이 상륙작전의 대안으로 거론됐다. 그러나 인천이 상륙지점으로 결정된 것은 우리나라의 상징인 수도 서울과 인접해 있는 지리적 이점이 중요한 결정 변수로 작용하게 됐다. 군산, 포승면, 주문진은 서울 탈환으로 얻을 수 있는 전략적·정치적·심리적 효과를 거둘 수 없으므로 작전지역에서 배제됐다. 이러한 점에서 인천시민은 인천이 어느 지역에 뒤지지 않는 호국 간성의 도시로서 훌륭한 역할을 수행했다는 자부심과 긍지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결과 9월28일 수도 서울을 탈환하고 한국전쟁의 전세를 역전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아마도 이 작전이 없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 역사는 판이하게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최소한 남한만이라도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이 보장되고 시장경제 체제가 실현돼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은 우리에게 커다란 행운이다. 이러한 지난 역사를 다시한번 되새길 필요가 있다. 국민이 화합하고 국가가 재도약할 수 있는 에너지 원으로 삼아 복지·통일국가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류 인 철(인천보훈지청 보훈과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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