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사랑
[仁川의 名所] 인천이야기-03(인천역사)
작성자 : 이은용
작성일 : 2005.05.19 07:38
조회수 : 3,136
본문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문학산, 계양산 등에서 발견된 각종 석기류들로
신석기 시대(新石器時代) 이후부터 였을 것으로 보여진다.
시내 학익동, 주안동, 문학동 등에 지석묘(支石墓)가 분포되어 있어
청동기시대 (靑銅器時代) 에는 부족세력이 자라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문헌상으로 삼국사기지리지 (三國史記地理志),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등에 의하면
인천은 삼국시대 초기에는 백제에 속하여 미추홀(彌鄒忽)이었으며,
고구려시대(高句麗 時代)에는 매소홀현(買小忽縣)이 설치되었다.
신라 진흥왕 때 신라의 영토가 되었고 통일신라시대인 경덕왕 16년(757)에 소성현(邵城縣) 으로 개칭되어
율진국의 영토가 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소성현이 수주(樹州)에 속하였다가 숙종(1096~1105)조에 모후 인예태후의 출생지라하여
경원군(慶源郡)으로 개칭 승격하여 인종조(1122~1146)에 모후 출생지라하여 인주(仁州)로 다시 승격되었으며,
공양왕 2년 (1390)에 칠대 어향(七代御鄕)이라하여 경원부 (慶源付)로 승격 개칭되었다.
조선조 들어 태조 1년(1392) 경원부가 인주(仁州)로 환원되었다가 태종13년(1413)에 인천군(仁川郡)으로 다시 격하되었는데
세조6년(1460)에 이르러 세종비 소현왕후의 외향이라하여 인천도호부(仁川都護府)로 승격되어 말기까지 이어졌다.
고종32년(1895) 지방관제의 개정에 따라 전국을 23부로 나누자
인천은 인천부(仁川府)로 개편되고 건양원년(1896)에 다시 경기도 인천부가 되었으며,
1910년 주권을 상실하자 조선총독부 관제에 의한 부(府)가 되었고 부세확장에 따라 부평(富平)의 대부분을 포함하였다.
광복후 1949년 8월15일 지방자치제가 시행됨에 따라
인천부는 시(市)로 개칭되고
1981년 인천직할시로 승격하였으며,
1989년 김포군 계양면, 옹진군 영종면, 용유면 등이 편입되었고
1995년 1월 1일 인천광역시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같은해 3월1일 강화군, 옹진군, 김포군 검단면을 통합하여 954㎢의 면적과 235만명의 인구를 가진
전국 제일의 광역시가 되었으며, 2001년말 현재 인천의 면적은 980.04㎢이고 인구는 2,564,598명이다.
이 자료는 『인천시의 이모저모2002』(행정간행물등록번호54-6280000-000041-10)에서 발췌한것입니다
신석기 시대(新石器時代) 이후부터 였을 것으로 보여진다.
시내 학익동, 주안동, 문학동 등에 지석묘(支石墓)가 분포되어 있어
청동기시대 (靑銅器時代) 에는 부족세력이 자라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문헌상으로 삼국사기지리지 (三國史記地理志),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등에 의하면
인천은 삼국시대 초기에는 백제에 속하여 미추홀(彌鄒忽)이었으며,
고구려시대(高句麗 時代)에는 매소홀현(買小忽縣)이 설치되었다.
신라 진흥왕 때 신라의 영토가 되었고 통일신라시대인 경덕왕 16년(757)에 소성현(邵城縣) 으로 개칭되어
율진국의 영토가 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소성현이 수주(樹州)에 속하였다가 숙종(1096~1105)조에 모후 인예태후의 출생지라하여
경원군(慶源郡)으로 개칭 승격하여 인종조(1122~1146)에 모후 출생지라하여 인주(仁州)로 다시 승격되었으며,
공양왕 2년 (1390)에 칠대 어향(七代御鄕)이라하여 경원부 (慶源付)로 승격 개칭되었다.
조선조 들어 태조 1년(1392) 경원부가 인주(仁州)로 환원되었다가 태종13년(1413)에 인천군(仁川郡)으로 다시 격하되었는데
세조6년(1460)에 이르러 세종비 소현왕후의 외향이라하여 인천도호부(仁川都護府)로 승격되어 말기까지 이어졌다.
고종32년(1895) 지방관제의 개정에 따라 전국을 23부로 나누자
인천은 인천부(仁川府)로 개편되고 건양원년(1896)에 다시 경기도 인천부가 되었으며,
1910년 주권을 상실하자 조선총독부 관제에 의한 부(府)가 되었고 부세확장에 따라 부평(富平)의 대부분을 포함하였다.
광복후 1949년 8월15일 지방자치제가 시행됨에 따라
인천부는 시(市)로 개칭되고
1981년 인천직할시로 승격하였으며,
1989년 김포군 계양면, 옹진군 영종면, 용유면 등이 편입되었고
1995년 1월 1일 인천광역시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같은해 3월1일 강화군, 옹진군, 김포군 검단면을 통합하여 954㎢의 면적과 235만명의 인구를 가진
전국 제일의 광역시가 되었으며, 2001년말 현재 인천의 면적은 980.04㎢이고 인구는 2,564,598명이다.
이 자료는 『인천시의 이모저모2002』(행정간행물등록번호54-6280000-000041-10)에서 발췌한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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