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53개의 돈대(墩臺) 중에서 2개의 돈대는 없앴고 지금은 51개의 돈대만이 있다. 두 번 전의 기미년(1679, 숙종 5) 봄에 함경도·황해도·강원도 세 개의 승군(僧軍) 8천명 및 어영군(御營軍) 4천300명이 40일에 걸려서 돈대를 쌓았다.'
조선 영조 때 편찬된 종합적 지리지인 여지도서(輿地圖書)의 강화부(江華府) 편에 나타난 기록이다. 강화도에 돈대를 쌓는데 황해도는 물론 함경도와 강원도의 승군들까지 동원됐다는 것이다. 이같은 기록과 함께 300여년 전의 강화도의 지도, 도로망, 연혁, 고을 이름, 석곽, 관직, 산천, 성씨, 풍속, 학교, 사당, 특산물, 목장, 군사 숫자 등이 상세히 기록된 '여지도서 강도부지'가 현대어로 번역돼 나왔다. 인천학연구원 문용식 연구교수가 번역해 엮은 '여지도서 강도부지'가 인천학자료 총서(1)로 출판된 것이다. 또 강화도의 풍속을 설명하면서는 바다 가운데 섬이라 풍기가 드세므로 백성의 풍속이 꽤 사나운 구석이 더러 있다면서 유학에 힘쓰지 않고 오로지 무예만을 숭상한다고 적고 있다. 특히 농사나 길쌈에만 힘쓸 뿐 예절에는 소홀하며, 미신을 따르고 노는 것만 좋아한다고 해 당시 강화도 사람들이 거칠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우리에게 조선 후기 강화부의 상황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할 이 책은 특히 한자로 된 책 원문과 각각의 색인을 달았다.
/ 정진오·schild@kyeongi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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