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일 오전 매서운 겨울 날씨에도 불구하고 인천시 서구 경서동 청라 매립지를 찾은 겨울 철새무리가 하늘가득 수놓고 있다./박영권 (블로그)pyk | |
| |
‘후닥닥∼’ 갈대 숲 사이로 고라니 두 마리가 인기척에 놀라 급히 도망간다. 갈대숲과 빈 농경지에서 휴식을 취하던 쇠기러기, 큰기러기, 청둥오리, 흰뺨검둥오리, 고방오리 등 멸종위기종, 천연기념물인 수 천 마리의 철새들이 하늘을 수 놓고 있다. 간혹 매 종류와 황조롱이, 말똥가리 녀석들도 자신들이 이 곳의 주인임을 과시하며 날아 올랐다. 갈대 숲 인근에는 너구리, 청설모, 고라니의 배설물이 즐비하게 널려 있다.
언뜻 보기에는 이 곳이 철새 도래지로 유명한 서산 천수만, 낙동강 하구, 한강 하구로 착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곳은 인천 도심에서 멀지 않은 청라매립지의 모습이다.
1일 오전 9시30분쯤 인천시 서구 경서동 청라매립지. 농경지와 갈대숲, 하천, 습지로 이뤄진 540만평 규모의 광활한 청라매립지는 고요하기만 했다.
그러나 포유류의 이동 통로인 갈대숲과 하천 주변에는 고라니와 너구리, 두더지 배설물과 발자국이 즐비해 활발한 생태계 흐름을 엿 볼 수 있었다.
고라니 배설물과 발자국을 따라간 지 20여 분이 지났을 무렵, 약 1m 가량의 고라니 한 쌍이 수줍은 모습으로 나타났다가 놀라 달아났다. 고라니는 산골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슴류이지만 도심에서는 보기 드문 동물이다.
청라매립지 중심 지역으로 들어갈수록 큰기러기, 쇠기러기, 흰뺨검둥오리, 고방오리, 떼까마귀 등 수 천 마리의 철새가 청라매립지에서 달콤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철새 뿐 아니라 황조롱이를 비롯한 말똥가리, 매 등 보호조류도 눈에 띄었다. 2시간이 흘렀을 때 청라매립지 중심 부근 습지에서 노닐고 있는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 백조(큰고니) 4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인천에서는 보기 힘든 새이기 때문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긴 목과 우아한 날갯짓, 부리 모양 등이 영락없는 백조였다. 인천에도 백조가 찾아와 살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3월에는 전세계적으로 1만 마리밖에 없는 ‘겨울 진객’ 흑두루미가 이 곳을 찾아 학계의 큰 관심을 끌었다.
사정이 이런데도 개발 주체인 한국토지공사가 지난 2004년 11월 발표한 ‘청라지구 개발 사업 환경영향평가서’에는 이들 조류와 동물들이 누락됐다.
천연기념물 백조, 흑두루미 등 주요 멸종위기종의 도래 사실을 환경영향평가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또 왕성한 활동을 보여 한눈에 서식을 확인할 수 있는 고라니에 대한 언급도 없다.
이러다 보니 대체 서식지 마련, 생태 통로 조성 등 구체적인 보호 대책도 전혀 없는 실정이다. 이들 지역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시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면 고의로 이들 중요한 동물들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토지공사는 영종도의 북항준설토매립장과 김포의 대벽평야, 청라지구내 화훼단지가 대체 서식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대체 서식지 마련은 소극적이다. 생태 통로 조성도 고려치 않고 있어 어렵게 찾아온 귀한 손님들이 갈 곳을 잃고 있다.
인천녹색연합 한승우 사무국장은 “부실하게 만들어진 환경영향 재조사를 통해 멸종위기 보호 조류와 야식 동·식물 서식 실태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며 “환경부 등 관련 기관은 이들 지역에 대한 멸종 위기 조류의 보호 조치를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형래·이형택기자 blog.itimes.co.kr /trueye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