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사랑
[仁川歷史] 소설가 이원규(65회)의 인천지명考-45/신현동(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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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4. 6.27)
소설가 이원규의 인천 지명考-45
옛우리말 '새고개' 한자어 신현동, 토박이들은 '새오개'라 부르기도
서구 신현동(新峴洞)은 1789년(정조 13) 간행<호구총수>에 부평부 석곶면(石串面)의 동네로서 지금과 같은 신현리(新峴里)로 등재돼 있다. 일제가 강제합방 직후인 1911년 조사 작성한 <조선지지자료>에도 신현리(新峴里 새오개)라고 실려 있다. 석남동과 가정동 사이에 위치한 마을로 지난날에는 새오개 마을, 큰말, 작은말로 나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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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곶(石串)은 돌곶이의 한자음 표기이다. 돌곶이는 오늘의 가정동, 원창동, 신현동, 석남동, 가좌동을 통틀어 부르던 지명이었다. 오늘의 서곶지역은 옛날에 부평부에 속했으며 모월곶면도 있었다. 심곡동, 연희동, 공촌동, 경서동, 검암동, 시천동 백석동 등 북서곶이 모월곶면이었다. 석곶면 소재지가 어디였는가는 불확실하지만 신현동이었던 것으로 필자 선친의 <인천지명고>는 추측하고 있다.
신현동은 이곳의 옛 우리말 이름 새고개를 한자로 바꾼 것이다. 계속 새오개와 신현리라고 했고, 1914년 3월1일 부천군이 신설될 때 부평부 모월곶면과 석곶면이 서곶면 하나로 묶여졌으므로 신현리도 부천군 서곶면 소속으로 됐다. 1940년 4월1일 서곶면 전체가 인천부에 편입되면서 신현리도 인천의 일부로 됐다. 일제는 편입 즉시 한국식인 동네 이름을 일본식인 정명(町名)으로 바꾸었는데, 신현리는 겜무쪼(玄武町)로 됐다. 8·15 광복 후 정부는 일본식 지명을 없애는 일에 나섰고, 1946년 1월1일 신현동이라는 이름을 되찾았다.
1955년 10월1일 인근 가정동과 석남동에 통합돼 가정·신현·석남동이라고 부르다가 1977년 5월10일 이를 석남동 하나로 명칭을 바꿨으며, 1983년 10월1일에 이 석남동을 석남동과 가신동(佳新洞)으로 분동했다. 1990년 1월1일 인구가 증가하자 이 가신동을 가정동과 신현동으로 나눴다. 그러나 1998년 11월1일 다시 신현원창동으로 통합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신현동을 지금도 나이 많은 서곶 사람들은 새오개라고 부른다. 조선시대 중기 원창동(옛 지명은 포리 浦里)에 세곡의 하역과 보관을 위한 포리항을 만들고 큰 창고를 지었다. 세곡을 도성인 한양까지 육로로 실어가기 위해 새로 길을 닦으면서 고갯길을 만들고 그 고갯길을 '새고개'라 부르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음운변화해 새오개가 된 것이다. '새고개>새오개'의 음운변화 등식은 ㅣ모음 아래에서 ㄱ이 탈락하는 현상으로 국어에서는 흔한 것이다.
새오개 마을은 큰말과 작은말로 나눠 불리기도 한다. 북쪽 취락을 큰말 또는 큰새오개, 남쪽 취락을 작은말 또는 작은새오개라고 불렀다.
양금머리라는 작은 취락의 지명도 있다. 새오개에 서서 바라볼 때 평투고개라는 작은 고개를 넘어야 했는데, 그 고개를 솔앗너머라고 불렀다. 그 솔앗너머로 넘어가면 양지바른 남향의 작은 취락이 나오는데 그곳을 양금머리라고 불렀다. 지금 신현동과 석남동과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요굴이라는 작은 취락이 새오개 서쪽에 있었다. 구석말이라는 취락이 있었다. 구석지게 들어가 있어 그런 지명이 붙었다. 현재 신현북초등학교가 자리를 잡고 있는 곳이다.
옛날의 새고개길은 마을 서쪽에 있으며, 지금 도시화해 알아보기 힘들지만 법정동인 원창동과 경계를 이루는 곳이다. 도당굿을 하던 도당산에 있어 도당재고개라고도 한다.
멍개골 고개가 있었다. 도당산에서 동쪽으로 뻗어 내려온 구릉인데, 석남동과 경계를 이루는 곳이다. 평투고개는 양금말에서 새오개로 넘어가는 고개였다. 요굴고개는 새오개 마을에서 요굴마을로 가는 고개였다.
굴앗고개는 세오개마을에서 석남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였다. 지금 한화에너지로 가는 길과 네거리를 이룬다.
신현동에는 앞방죽과 너머방죽이라는 두 개의 방죽이 있었다. 앞방죽은 지금 신현아파트가 들어앉아 있고, 너머방죽은 가정동 봉화재 방죽까지 이어지는 길고 높은 둑으로 지금 신현중학교 북쪽 평지였다.
수령 500년이 넘은 회화나무가 신현동 131-7번지에 있다. 천연기념물 315호로 지정된 보호수이다. 높이 22m, 둘레 5.3m에 이르는 거목으로 멀리 보아서도 자태가 매우 장려하다.
이문일 column@incheonilbo.com
2014년 06월 27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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