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사랑
[仁川歷史] Re : 소설가 이원규(65회)의 인천지명考-25/문학동(퍼온글)
작성자 : 박철주70
작성일 : 2014.05.05 17:56
조회수 : 2,890
본문
'비류백제'보다는 '비류미추홀'이라고 하는것이 옳듯 싶습니다. 기원전18년에 비류는 문학산을 도읍으
로하고 미추홀국(國)을 세웠습니다. 온조는 하남 위례성을 도읍으로하였는데 이전 졸본부여로부터
데리고 온 열 명의 신하를 들어서 '십제'라 하였고 이후 백제라 하였습니다. 물론, 삼국사기 백제본기
에는 '미추홀이 습하고 물이 짜다'하여 살곳이 못되어 비류가 위례성에 가보고 기죽어 자결했다고 하나
(비류를 따르는 백성들은 위례성에 흡수), 위정자(온조백제)들의 생각이고... 실제는 온조의 신하 열 명
의 풍수지리에 의해 비류에 비협조한 결과 비류의 나라 세움에 힘이 약하여(습하고 짜다는것은 백제의
변명) 실패한 것입니다. 오늘의 인천을 보면 비류의 선택은 그때도 분명 옳은 선택였습니다. 미추홀의
권역인 부평, 김포평야도 농업에서는 으뜸입니다. 연수동의 능허대를 통한 해상교통도 최고입니다. 문
제는 인간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비류백제'보다는 '비류미추홀'이 맞는다고 할 수있습니다.
'온조백제'는 있어도 '비류백제'는 불가이옵니다. 이것은 인천의 자존심이기도 합니다.
참고로, 문묘라고하는 향교가 '학산'(문학산의 옛 명칭) 가까이에 있어서 문묘의 '문'자를 '학산' 앞에
붙여서 '문학산'이라고 불리우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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