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그날 이겼으면…지금은 좋은 추억이죠”

▲김홍집 부평리틀야구단 감독
1994년 한국시리즈 1차전
141구 완투패 명경기 주인공

“아이들 지도하는 일 의미있어
다 큰 제자 찾아올때 보람느껴”

1994년 한국시리즈 1차전. LG 트윈스와 한국 야구 왕좌를 두고 혈투를 벌였던 당시 인천 연고 팀, 태평양 돌핀스. 그 중심에는 선발투수 김홍집이 있었다.

김홍집은 연장 11회 말까지 이어진 경기에서 완투하며 호투했다는 평을 받았다.

이날 김홍집이 던진 공은 무려 141구. 그는 야구팬들에게 잊지 못할 명장면을 선사했다.<인천일보 1994년 10월19일자 5면 ‘비운의 돌고래 “2차전서 보자”’>

▲1994년 10월18일 한국시리즈 1차전 11회말. /출처=KBS n SPORTS 영상 캡처

부상 등의 이유로 길지 않았던 선수 생활을 마친 김홍집은 현재 인천 부평에서 리틀야구단 감독으로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다.

<빽투더인천>이 빛나는 완투패의 주인공, 지금은 꿈나무들의 지도자가 된 김홍집(50) 감독을 다시 만났다.

▲인천일보 1994년 10월19일자 5면. /인천일보DB

 

1994년, 그날의 기억

“공식적으로 홈런 맞은 볼까지 따지면 141구를 던졌고요. 몸을 푼 것까지 따지면 250구에서 300구까지 던졌다고 할 수 있죠.”

김홍집 감독은 완투패한 1차전 경기 날을 이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이날 선발투수였던 태평양의 김홍집 당시 선수와 LG의 이상훈 선수는 기대를 모으는 신인이자 라이벌이었다. 한국시리즈 1차전은 그런 두 선수의 맞대결로 여겨졌다.

태평양이 프로야구 출범 13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무대에 진출한 경기이기도 했다. 팬들의 기대감은 증폭될 수밖에 없었다.

1994년 10월18일 한국시리즈 1차전. /출처=KBS n SPORTS 영상 캡처
▲1994년 10월18일 한국시리즈 1차전. /출처=KBS n SPORTS 영상 캡처

김 감독은 “태평양이 그 당시 순위권에 올라가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에 우승 한 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합심해서 1차전에 들어갔다”며 “이상훈 선수와의 대결도 승부욕이 발동해서 지고 싶지 않았다”고 당시 남달랐던 마음가짐을 전했다.

하지만 쉽게 결판이 나지 않았다. 경기는 9회 말을 넘겨 11회를 향해 달려갔다.

보통 승부가 나지 않으면 투수를 교체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태평양은 연장전을 마칠 때까지 김홍집을 마운드 위에 세웠다.

“김시진 투수 코치님은 ‘이제 그만하자’고 하셨지만 저는 용납이 안 되더라고요. 1대1 상황에서 내려가기도 좀 그렇고. 컨디션도 그때는 뭐 최고였죠.”

김홍집은 순간 정동진 감독과도 눈이 마주쳤다고 전했다. 김홍집의 눈엔 경기를 이어가고 싶다는 의지가 가득했다. 정 감독이 다가오자 그는 마운드에 남고 싶다고 말했다.

“감독님 제가 (경기를) 더 이어가고 싶습니다."

“괜찮냐?”

“네 괜찮습니다.”

짧은 대화 뒤 정 감독은 김 투수 코치에게 “괜찮다잖아”라고 말했다. 그렇게 김홍집은 경기가 끝날 때까지 마운드를 지켰다.

하지만 1차전 11회 말. 타석에 나선 LG의 김선진 선수가 끝내기 홈런을 날리면서 태평양 돌핀스는 패배를 결정짓게 된다.

김홍집 감독은 “그래서 ‘그래, 한번 가보자’라는 마음으로 경기를 이어갔지만 결과적으로는 안 좋게 됐는데, 그래도 사실 후회는 없다”라고 소회를 풀었다.

▲1994년 10월18일 한국시리즈 1차전 11회말. /출처
=KBS n SPORTS 영상 캡처

 

13년 차 리틀야구단 감독 김홍집

그 시절 훨훨 날아다녔던 김홍집 감독의 프로선수 생활은 다소 짧았다.

부상은 고질적으로 그를 괴롭혔다.

▲<빽투더인천>이 지금은 꿈나무들의 지도자가 된 
김홍집(50) 감독을 다시 만났다.

“20대 중반 군 복무를 했어요. 군 복무 때문에 밤새고 시합을 나가면서도 무리인 줄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그게 데미지가 오더라고요. 몸이 조금씩 망가졌죠.”

그렇게 쌓이고 쌓인 피로는 부상으로 돌아왔다.

“선수들은 그런 게 있거든요. 누적된 것도 있지만 공 하나 잘못 던진 것 때문에 잘못돼서 아픈 경우. 그래서 부상·재활·수술을 했죠.”

프로선수를 그만둔 김 감독은 야구계를 떠날까도 고민했었다. 그런 그를 다시 불러들인 건 모교인 인천고등학교 선배, 양후승 당시 인천고 야구부 감독이었다.

“양 감독님이 찾아와서 왜 좋은 재능을 썩히냐 모교로 와라(라고 말했어요). 이제 그 한마디가 어떻게 보면 시작이 됐고 보조코치식으로 해서 1년 계약을 맺었죠.”

하지만 부담감이 그를 짓눌렀다.

“모교에서 가르치는 게 보람은 있지만 부담이 진짜 크거든요. 아이들이 좋은 대학에 진학하거나 전국대회 우승을 하거나 하는 등의 성적이 제일 중요해요. 그런데 그때 사실 그러지 못했어요.”

부평구 리틀야구단 선수들과 김홍집 감독(오른쪽). /부평구 리틀야구단.
▲부평구 리틀야구단 선수들과 김홍집 감독(오른쪽). /부평구 리틀야구단.

실적에 부담을 느껴 고교 야구부를 떠나려는 그에게 아이들 야구단을 만들어보지 않겠냐는 제안이 들어왔다.

“그래서 인천에서 두 번째로 저희 팀이 만들어진 거예요. 사설이라고 보시면 되고요. 그렇게 지금 13년 동안 운영하고 있습니다.”

선수로 수년, 감독으로서 또 수년을 보낸 김홍집. 선수로서 야구를 하는 것과 감독으로서 야구를 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선수 때는 본인이 하면 되잖아요. 지도자는 본인이 할 수가 없어요. 아이들이 뛰게끔 해줘야 하는데 더 어려워요. 나는 이렇게 했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따라와 주지 않을 때(가 있어요)”

쉬운 것 하나 없지만 즐겁다.

“어떻게 보면 지금 이게 저는 적성에 맞아요. 가끔 안부 문자도 오고 찾아도 오고 하더라고요. 그런 게 제일 큰 보람이죠.”

 

어느 곳에 있더라도 내 고향은 인천

1994년 태평양 돌핀스 팬북(왼쪽)과 팬북에 실린 김홍집 선수(오른쪽).
▲1994년 태평양 돌핀스 팬북(왼쪽)과 팬북에 실린 김홍집 선수(오른쪽).
" src="http://www.incheonilbo.com/news/photo/202111/1120888_399928_5726.jpg" style="box-sizing: inherit; border-style: none; display: inline-block; vertical-align: middle; max-width: 100%; height: auto; width: 774px;">▲1995년 태평양 돌핀스 팬북에 실린 김홍집 선수의 1993·1994년 성적.

김홍집 감독은 인천에서 나고 자란 인천 토박이다. 프로선수 시절 대부분도 인천에서 보냈다.

인천은 그런 김 감독에게 애정이 깃든 도시일 수밖에 없다.

“고향이죠. 애환이 담겨있고. 대학생활 4년 빼고는 거의 인천에 있었으니까요. 다른 곳에 가 있어도 내가 갈 곳은 인천. 그렇게 생각을 했어요.”

인천이 그의 뇌리에 박혀 있듯 인천 야구팬들의 머리에도 그가 각인됐다.

그가 입단했던 1993년 고전을 면치 못했던 태평양은 1994년 12승 3패를 기록했다. 김홍집은 한 시즌 동안 완투 경기를 다섯번이나 치르며 맹활약했다.

 

야구인 김홍집

▲ 태평양돌핀스 투수 김홍집 선수(왼쪽, 1994년 당시)와 부평구 리틀야구단 김홍집 감독(오른쪽)

“한 10년만 늦게 태어났으면…….”

한창일 시절 군 복무와 프로 경기 출전을 병행하느라 몸이 축난 그에게는 상황이 달랐더라면 조금 더 좋은 환경에서 야구를 할 수 있었을 터라는 마음이 남아있다.

인터뷰 내리 시종일관 완투패를 아픈 기억이라고 곱 *던 김홍집 감독은 그래도 이제는 웃으며 추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실 그 게임이 저한테는 완전히 전환점이 된 것도 있어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내가 만약에 그때 이 공을 안 던졌으면, 만약에 그날 이겼으면. 이런 것도 생각을 해봤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그냥 다 좋은 기억으로 남았어요. 그리고 그때 그렇게 했기 때문에 많은 분이 아직도 알아봐 주시는 거겠죠.”

/글=박서희 기자 joy@incheonilbo.com

/영상=김현정 기자 kyule@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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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서희
  •  승인 2021.11.18 17:44
  •  수정 2021.11.19 00:48
  •  2021.11.19 인천판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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